[한경에세이] 이세돌과 알파고

임승순 <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sslim@hwawoo.com >
2년 전, 프로기사 이세돌이 바둑을 위해 개발된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대국을 펼친 것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세돌은 세 번 연속 패한 뒤 한 인터뷰에서 “비록 졌지만 즐겁게 뒀다”고 했다. 이세돌이 연속된 강행군 등 어려운 대국 환경에서 아무 감정이 없는 AI에 내리 세 번 진 다음 4국을 이긴 것은 놀라운 정신력이 아닐 수 없다. 그 비결은 아마도 이세돌 본인이 말한 ‘즐거움’에 있었을 것이다.

AI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알파고는 반복된 심화학습 과정을 통해 인간이 발명한 규칙에 따라 행마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인간의 연산 능력이 컴퓨터를 따라갈 수 없듯이 효율적 행마를 찾아내는 능력도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프로기사들이 AI 바둑을 연구하는 풍경이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게 됐다. 얼마 전까지도 상상하기 어렵던 모습이다. 그러나 알파고는 인간의 의식 체계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많은 학자는 AI가 의식을 갖기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보고 있다. 의식의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순수한 지능과는 그다지 연관이 없고 살아 숨 쉬는 유기체로서의 성질과 더 깊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기쁨이나 고통은 똑똑해야 느끼는 게 아니라 살아있어야 느끼는 것이다.

최근 구글에서 한층 진화된 비서 업무를 수행하는 ‘구글 어시스턴트’ 로봇을 개발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로봇이 사람과 똑같은 음성으로 전화 주문을 하는 영상도 공개됐다. 대부분의 인간 활동 영역을 AI나 로봇이 대신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갈수록 인간의 생활은 편리해지고, 사람들은 더 많은 여유시간을 누리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일부 전문가는 언젠가는 의식을 갖춘 로봇이 인간세계를 지배할 날이 올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인간의 ‘편리함에의 중독’은 ‘로봇의 인간화’ 이전에 먼저 ‘인간의 로봇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인간이 기계의 편리함에 중독돼 의식 활동의 기초가 되는 정신적, 육체적 경험을 포기하거나 상실하는 환경이 광범위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어에는 목적지에 도달함을 의미하는 단어로 ‘우회하다’라는 뜻의 ‘entgehen’과 ‘통과하다’라는 뜻의 ‘durchgehen’이 있다. 우리가 고통과 즐거움을 통해 참된 존재가치를 느끼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을 직접 통과하는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편리함’과 ‘진정한 즐거움’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