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CIA 수장 탄생… 해스펠, '물고문 논란' 뚫고 의회 인준

평생 첩보업무 종사자로는 두번째…러시아 전문가로 9·11 당시 대테러 작전
트럼프·공화·정보당국 '환영'…민주당은 "물고문 책임자 안돼" 반발

미국 중앙정보국(CIA) 역사상 첫 여성 수장이 탄생했다.

17일(현지시간) AP 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미 상원은 이날 지나 해스펠(61)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내정자에 대한 인준안을 찬성 54표, 반대 45표로 가결했다.

여당인 공화당에서 2명이 반대표를 던졌으나, 민주당에서 6명이 찬성함에 따라 겨우 의회 문턱을 넘어설 수 있었다.인준안 통과로 해스펠은 CIA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국장이자, 제5대 국장인 리처드 헬름스(1966∼1973년 재직) 이후 두 번째로 평생 첩보 업무에만 종사한 요원 출신 국장이 됐다.

국무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마이크 폼페이오 전임 국장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해스펠 신임 국장은 인준 과정에서 과거 물고문 전력으로 논란을 빚었다.

논란의 핵심은 9·11 테러 당시 CIA 대테러센터 간부로 활동하던 해스펠이 2002년 태국에서 '고양이 눈'이라는 암호명의 비밀감옥 운영을 책임질 당시 물고문 등 가혹한 심문기법을 지휘했느냐는 것이었다.이 감옥에서는 알카에다의 테러 용의자 아부 주바이다, 압드 알라힘 알나시리를 상대로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돼 물고문을 받은 전력이 있는 정계 거물인 존 매케인(공화·애리조나) 상원의원은 "미국인에 의한 고문의 사용을 감독하는 데 있어 해스펠의 역할은 충격적이다.

그는 고문의 부도덕성 인정을 거부한 만큼 (CIA 국장) 자격이 없다"면서 인준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투병 중인 매케인 의원은 이날 의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해스펠은 논란이 일자 상원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마크 워너(버지니아) 의원에게 서한을 보내 9·11 이후의 "가혹한 구금과 심문 프로그램은 시행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반성문'을 제출, 워너 의원 등의 지지를 끌어냈다.

그는 인준 청문회 답변을 통해서도 CIA에서 다시는 고문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상원 정보위는 전날 찬성 10, 반대 5로 해스펠 내정자에 대한 인준을 가결해 인준안 통과에 청신호를 띄웠다.

해스펠이 의회 인준을 최종 통과한 데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새 CIA 국장 지나 해스펠에게 축하를"이라는 트윗을 올리며 환영했다.

미 상원 공화당 2인자인 존 코닌 의원도 "해스펠은 조직 내에서 사랑받는 인물"이라면서 "그가 대통령과 정책결정권자들에게 객관적이고, 편견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은 "아무도 고문 프로그램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면서 "여기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이 CIA를 이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WP 등에 따르면 켄터키 주 애슐랜드에서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해스펠은 공군 병사였던 부친을 따라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자랐다.

영국에서 고교를 졸업한 해스펠은 원래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원했으나, '여자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부친의 조언에 루이빌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1985년 CIA에 들어갔다.

첩보영화 같은 삶에 매력을 느꼈던 그는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와 유럽의 첩보 현장에서 활약하면서 옛 소련 정보당국을 상대로 한 작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96년 아제르바이잔을 시작으로 4번이나 CIA 해외지부장을 맡아 남성 요원들을 지휘했으며, CIA 대테러센터로 옮긴 첫날 9·11 테러가 발생하는 바람에 알카에다를 겨냥한 비밀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대니얼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해스펠은 오랜 경력을 통해 (첩보의) 최전선과 행정에서 두루 경험을 축적했다"며 "그는 개척자"라고 칭찬했다.러시아 전문가로 꼽히는 해스펠은 최근 영국에서 벌어진 러시아 이중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에 맞서 강경 대응을 주장해 결국 러시아 정보요원 60명 추방과 시애틀 러시아영사관 폐쇄를 관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