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덕후' 낚았다… K웹툰의 진격
입력
수정
지면A9
커버스토리 - 웹툰 수출산업으로 뜨다한국 웹툰의 경쟁력은 세계 양대 만화콘텐츠 시장인 일본과 미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플랫폼인 라인웹툰은 서비스 개시 4년 만인 지난해 월간 해외 사용자가 2400만 명까지 늘었다. 미국 등 북미지역의 월간 사용자는 300만 명을 넘었다.
네이버 라인웹툰, 일본 만화가 모아
아마 작가 3만7000명, 5만여 편 올려
픽코마는 '기다리면 무료' 모델로 인기
일본 웹툰 플랫폼 업체들도 벤치마킹
레진, 美 구글플레이 만화 매출 1위
현지 '문화 덕후' 기용, 번역 세련되게
한국식 유머로 진지한 美만화와 차별화
마블코믹스, DC코믹스가 버티고 있는 미국 만화시장(웹툰+출판만화)은 1조5000억원 규모로 한국(5000억원)의 세 배다. 세계 1위 만화 강국 일본은 미국의 세 배가 넘는 5조원대 시장이다. 웹툰시장만 2조2000억원에 달하며 성장률도 16%대로 빠르다.일본에선 ‘현지화 전략’ 적중
뚱보 소년이 어느날 꽃미남 육체를 얻어 이중생활을 벌이는 ‘외모지상주의’, 소녀를 따라 탑으로 들어온 소년의 모험을 그린 ‘신의 탑’, 개성 강한 사람들이 일하는 직장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그린 ‘모럴 센스’ 등.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한국 웹툰들이다. 스토리와 구성, 그림 등이 훌륭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네이버의 라인웹툰은 한국에서 창작자를 모은 방식으로 일본 만화가들을 플랫폼으로 끌어당겼다. 국내 네이버웹툰 서비스의 아마추어 창작자 공간인 ‘도전만화’를 라인웹툰에서 ‘디스커버’라는 이름으로 재탄생시켰다. 디스커버에 작품을 올린 일본 아마추어 작가는 3만7000명이 넘는다. 아마추어 작품 누적 편수 20만여 편 중 약 25%인 5만4000여 편이 일본인 작품이다. 매주 신규 에피소드를 추가하는 작품도 1600편 이상이다. 라인웹툰은 ‘구독’ 기능을 넣어 새로운 에피소드가 올라오면 ‘알림’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사이렌스 라멘트’라는 제목의 웹툰을 ‘구독’ 신청한 독자는 100만 명에 이른다.픽코마는 ‘기다리면 무료’라는 비즈니스 모델로 승부를 걸었다. 만화책 한 권을 여러 편으로 나눈 뒤, 한 편을 보고 특정 시간을 기다리면 다음 편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기다리지 않고 다음 편을 보려면 요금을 내야 한다. 일본 독자의 열람 심리를 자극한 판매 방식이다. 일본 대형 출판사 및 주요 만화 플랫폼 사업자들도 ‘기다리면 무료’ 방식을 잇따라 도입하는 등 픽코마를 벤치마킹했다.
코미코는 ‘리라이프’와 같은 일본 웹툰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을 연재해 현지 시장을 개척했다. 2013년 10월 일본 코미코 서비스 개시와 함께 연재를 시작해 4년6개월 만인 올해 3월 이야기를 완결지었다. 코미코는 현지화를 위해 진출한 나라에서 독자적인 편집인과 운영팀을 갖추고 서비스한다. 글로벌 시장에 작품을 연재할 때는 각국 사업 담당자가 협의해 서비스 여부를 결정한다. 각 나라의 독자 취향과 현지 정서를 고려해 작품을 검토하기 위해서다.
출판만화가 강세인 일본 시장의 특성을 반영해 인기 웹툰 작품을 단행본으로 선보인 전략도 잘 먹혔다. NHN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일본의 성숙한 만화 출판시장에서 비롯된 풍부한 만화 자산과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웹툰 서비스 운영 노하우를 접목한 결과”라며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와 남미 주요 지역, 그리고 스페인어권 국가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미국 ‘문화 덕후’를 전위대로
레진코믹스(레진엔터테인먼트의 글로벌 웹툰 플랫폼)가 올 1분기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를 제치고 미국 구글플레이 만화 카테고리 매출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은 ‘사건’이었다. 로맨스물 ‘아가씨와 우렁총각’이 전체 조회수 1위다. 진지하고 무거운 미국 만화와 달리 한국식 개그와 유머가 통했다.
레진은 깔끔하고 세련된 번역을 위해 ‘현지 문화 덕후(마니아)’를 기용해 번역, 편집, 외국어 콘텐츠 제작 등을 하고 있다. 액션 판타지 공상과학(SF) 등 다양한 장르의 웹툰을 국내와 미국의 문화 덕후들로 구성한 전담팀에서 영어 콘텐츠로 제작하는 것이다. 문화 덕후들은 번역하기 까다로운 만화 속 대사나 신조어, 유행어 등을 현지에서 쓰는 단어와 문장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해외 팬들과의 온라인 소통은 물론 북미 최대 만화 축제인 애니메엑스포(AX) 등에 참가해 ‘오프라인 스킨십’을 확대하고 있다.레진 관계자는 “2015년 말 미국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라며 “업계에서 처음으로 유료화라는 사업모델을 제시하며 주목받은 만큼 돈값 하는 콘텐츠를 창작해내겠다는 기본 가치를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웹툰
webtoon. 디지털 환경의 한 화면에 그림 이야기 50~60컷으로 궁금증을 유발한 뒤 다음 화면을 보도록 이끄는 만화소설. 미니시리즈처럼 매주 한 편씩 내보내 독자가 기다리도록 유도한다. 한국이 디지털 환경에 맞도록 세계 처음으로 개발했다. 한국 웹툰은 K팝 이후 가장 강력한 한류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