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디즈니피케이션(disneyfication)

고두현 논설위원
“도시 전체가 외지인들의 거대한 놀이마당으로 변했어요. 물가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정작 우리는 생활 터전을 내주고 변두리 지역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몸살을 앓는 도시가 늘고 있다. 매년 2000여만 명이 몰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관광객 꺼져라”라는 팻말을 든 시위가 벌어졌다. 주거지역이 관광지로 변하고 임차료가 급등하자 쫓겨날 위기에 몰린 주민들이 들고일어났다. 1950년대 18만 명에 이르던 주민 수는 5만여 명으로 줄었다. 급기야 관광객 출입을 통제하는 검문소까지 등장했다.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디즈니피케이션(disneyfication)’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1991년 피터 팔론 뉴욕대 교수가 처음 사용한 이 말은 도시가 고유의 정취를 잃고 미국 놀이공원인 디즈니랜드처럼 관광객 놀이터로 변해간다는 뜻의 조어(造語)다. 관광객 때문에 주민이 쫓겨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과 함께 쓰인다.

인구 85만 명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도 연간 1800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빌린 외지인들의 고성방가와 무질서 등에 시달리던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의회는 결국 도심 지역의 에어비앤비 영업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1인당 하루 10유로(약 1만3000원)의 관광세까지 부과했다.

‘반(反)관광객’ 정서가 심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는 과잉 관광(over tourism)을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시장 후보가 당선됐다. 아시아권에서도 필리핀의 보라카이와 태국의 마야 베이 등이 한시적 폐쇄 결정을 내릴 정도로 이 문제가 심각해졌다.한국이라고 다를 게 없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서울의 북촌한옥마을과 이화마을, 세종마을에서는 소음과 쓰레기, 사생활 침해 때문에 주민들이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거주자 16만 명인 종로구에 외지인이 하루 30만 명씩 몰리니 그럴 만도 하다. 오죽하면 벽화마을 사람들이 벽에 붉은 페인트를 덧칠해버렸을까.

구청이 나서 관광객 출입 제한 시간을 두고 지속적인 에티켓 캠페인을 펼치기로 하는 등 대안을 모색했으나 아직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관광객이 아니라 침략자다”라는 유럽의 시위 문구가 우리나라에도 등장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