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정상회담 끝나자… 北, 남측 취재단 풍계리행 '계산된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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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이르면 24일 오후 핵실험장 폭파 폐쇄할 듯북한이 23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현장을 취재할 한국 기자단 방문을 뒤늦게 허용했다. 우리 정부의 기자단 명단 수락 요청을 닷새 동안 계속 거부하다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수락한 것이다. 정부는 환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국 기자단이 막판에 합류하면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행사는 이르면 24일 오후나 25일 중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남측 기자단, 서울공항서 남북 직항로 통해 원산 도착
12시간 기차로 이동 후 24일 오후께 핵실험장 도착
갱도 입구 폭파 후 시설 철거 예정… 내부는 공개 안해
CNN "전문가 참관 빠져 증거 인멸에 불과" 주장
◆한국 취재단, 가까스로 합류통일부는 이날 오전 9시 판문점 채널이 열리자마자 북측에 한국 기자단 명단을 통보했고 북측은 이를 접수했다. 통일부가 지난 18일 북측에 처음 명단 전달을 시도한 지 닷새 만이다. 전날 오전까지만 해도 외신기자들만 베이징에서 원산으로 이동하면서 한국 기자단의 핵실험장 참관은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통일부가 전날 밤 “내일 아침 판문점을 통해 우리 측 기자단 명단을 다시 전달할 예정”이라며 “북측이 수용한다면 남북한 직항로를 이용해 원산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방북 가능성은 다시 살아났다. 통일부가 방북 경로까지 언급하면서 남북 간 물밑 접촉을 통해 상당한 논의를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베이징을 방문한 한국 기자단도 이날 오후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새벽 급히 귀국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시작으로 북·미 정상회담과 각급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조속히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한국 기자단이 막판에 합류하게 된 것은 북한의 계산된 전략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연합훈련과 태영호 전 영국 공사의 발언 등을 빌미로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소해 우리 측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뒤 한·미 간 중재자로서 우리 측 역할을 압박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얘기다.
한국 기자단은 이날 낮 12시30분께 서울공항에서 정부 수송기를 타고 원산으로 출발해 오후 2시50분께 도착했다. 한국을 포함한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5개국 취재단은 이날 오후 7시께 원산에서 전용 열차를 타고 풍계리 핵실험장 시작점인 재덕역으로 향했다. 이어 차량을 타고 풍계리 핵실험장으로 이동, 24일 오후에는 풍계리 현지에 도착해 행사를 관람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장 통신 사정이 열악해 기자단은 풍계리 폐쇄 과정을 지켜본 뒤 원산으로 다시 돌아와 취재 내용을 송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구체적인 행사 일시는 밝히지 않았다. 북측 관계자는 이날 기자단에 “내일 일기 상황이 좋으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北 비핵화 진정성 논란 지속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의 모든 갱도를 폭파하더라도 실질적인 핵 폐기 조치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풍계리에는 네 개의 갱도가 있으며, 1차 핵실험에 사용하고 오염으로 폐쇄된 1번 갱도와 2∼6차 핵실험에 사용한 2번 갱도를 제외하고 3, 4번 갱도는 사용 가능한 상태로 관리 중인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이번에 모든 갱도를 폭발시켜 무너뜨린 뒤 입구를 완전히 폐쇄하고 지상에 있는 관측설비 등도 철거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갱도를 모두 폭파해도 북한이 추후 이 실험장을 재사용하기로 결정하면 언제든지 다시 파낼 수 있다. 미 CNN 방송은 지난 21일 북한이 전문가를 초청하지 않은 사실을 재차 꼬집으며 이번 행사를 통해 오히려 핵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조치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갱도 내부를 먼저 공개한 뒤 폭파해야 검증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기자단은 북측이 서쪽 갱도 인근 언덕에 설치한 전망대에서 폭파 장면을 관람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남측 기자단은 귀국 시 남북 직항로를 이용하지 않고 원산에서 베이징을 통해 인천공항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김채연 기자/공동취재단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