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영상에 밀렸던 오디오콘텐츠 전성기… 유료화 바람

팟빵 월 3억원 결제
네이버, 콘텐츠 거래 서비스
일상에 밀착한 '교감의 진화'
우리는 라디오를 들을 때 돈을 내지 않는다. 다시듣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TV 프로그램은 ‘본방 사수’가 아닌 이상 돈을 내고 주문형 비디오(VOD)를 봐야 하는 것과 다르다. 영상에 비해 이용자 수가 적기도 하고 ‘라디오 콘텐츠는 무료’라는 인식이 오랜 기간 형성된 영향이 크다. 지상파 등 방송 라디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팟캐스트와 같은 오디오 콘텐츠도 무료다. 제작자들은 광고 수익에 기대는 정도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팟빵(사진), 오디오클립 등 국내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에 유료 서비스 바람이 불고 있다. 보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듣는 콘텐츠에도 내용만 좋으면 선뜻 지갑을 여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대표 플랫폼 팟빵은 지난해 8월 유료 콘텐츠를 처음 선보인 이후 결제 건수가 4만여 건에 달했다. 월평균 3억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말까지 누적 결제액이 4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 같은 반응에 유료 채널은 300개 이상 생겨났다. 지난해 1월부터 오디오클립 베타서비스를 제공하는 후발주자 네이버는 다음달부터 오디오 콘텐츠를 사고팔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300억원 규모의 오디오 콘텐츠 펀드를 조성한 것만으로도 시장성이 충분히 검증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았다. 그동안 영상에 밀려 ‘히든 콘텐츠’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젠 다르다. 사용자와 오디오 콘텐츠 사이 교감의 정도가 극대화되면서 대중의 일상을 파고드는 ‘킬러 콘텐츠’로 급부상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과 첨단기술도 집중되고 있다. 유튜브 등 영상 콘텐츠에만 관심을 보이던 개인, 기업이 오디오 콘텐츠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들을 확보하려는 팟빵, 오디오클립 등의 플랫폼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 시장의 출발점은 2004년 ‘팟캐스트(Podcast)’의 등장이다. 팟캐스트는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의 합성어로, 애플에서 선보인 라디오 형식의 프로그램을 지칭했다. 이젠 의미가 확대돼 오디오 콘텐츠를 뜻하는 말로 일반화됐다. 국내에선 2011년 정치 풍자 팟캐스트로부터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직설적인 표현 등을 즐기는 마니아 중심의 콘텐츠가 많았고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최근 급격히 시장이 커진 것은 인공지능(AI) 기술 발전과 맞물려 있다. AI 스피커와 연동하기 위해 다양한 음성 콘텐츠를 선보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투자가 확대되면서 콘텐츠 수도 많아졌다. 오디오 콘텐츠 채널 수는 팟빵에선 1만2000여 개, 오디오클립에선 400여 개에 달한다.

무엇보다 대중의 일상에 밀착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교감의 진화’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 라디오에선 자신의 취향과 무관한 음악과 사연을 일방적으로 듣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시장엔 예능부터 시사, 인문, 예술 등 다양한 분야가 총망라돼 있고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골라 들을 수 있다. 영상 콘텐츠는 흉내내지 못할 만큼의 개별화도 이뤄진다. 미처 가보지 못한 특정 공연의 정보와 리뷰를 전문가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접할 수 있고, 시간을 따로 내서 공부하기엔 벅찬 철학 담론도 가벼운 농담과 함께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됐다. 휘발성 강한 영상 콘텐츠의 홍수 속, 반대급부로 좀 더 안정적이고 감성적인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은 욕구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오디오 콘텐츠 안에선 기술도 철저히 교감에 중점을 둔다. 영상 콘텐츠에선 시선을 빠른 시간 안에 사로잡을 ‘쇼잉(showing)’에 집중하는 것과 정반대다.

많은 전문가가 콘텐츠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이라고 한다. 거창한 마케팅 기법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오래전 몸소 체험해봤다. 어릴 때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옛날이야기를 들었던 걸 떠올리면 된다. 다만 어른이 될수록 나에게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며 얘기해주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을 뿐이다. 오디오 콘텐츠는 결국 형태만 바뀌었지 우리가 늘 그리워하던 할머니 무릎과 목소리가 아닐까. 일상에 지친 나를 위해 소곤소곤 이야기해줄 나만의 스토리텔러 말이다.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