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최악 사태' 막았지만… 내년 대폭 인상 '빌미'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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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25일 새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의결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안은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한 1988년 이후 30년 만의 첫 제도 개편안이다. 1988년 시급 462.5원으로 시작한 최저임금이 2017년 6470원까지 올랐을 때만 해도 ‘산입범위’라는 용어는 생소했다. 하지만 올해 16.4%라는 기록적인 인상률과 함께 시급 7530원이 되면서 경제계에서는 기본급과 직무수당으로만 돼있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나왔다. 여야가 합의한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최저임금 인상도 좋지만 사업주의 지급 능력을 고려해달라”는 기업의 호소를 일정부분 반영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앞으로 도입 과정에서 노사 갈등이 확대될 수 있는 데다 산입범위 확대를 빌미로 내년 인상폭을 높이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어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30년 만에 산입범위 조정
상여금 25%·복리후생비 7% 초과분 산입
연봉 2500만원 이하 근로자 임금은 보전
정부 '최저임금 1만원' 가속페달 밟을 듯
연봉 2500만원 넘으면 적용 안 받아환노위가 이날 의결한 개정안은 매달 최저임금(올해 기준 157만3700원)의 25%(주 40시간 근로기준 39만3400원)를 초과하는 정기상여금과 최저임금의 7%(11만100원)를 초과하는 복리후생 수당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것이 골자다. 이렇게 되면 연봉 2500만원 안팎의 근로자들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영향을 받지 않아 임금을 보전받을 수 있고,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많이 받는 근로자일수록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연봉 4000만원을 받는데도 기본급이 적어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자가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환노위가 임금보전 대상으로 삼은 연봉 2500만원은 근로자의 중위연봉으로, 노동계가 요구하는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했을 때 최저임금 근로자가 받게 되는 연봉 수준(2508만원)과 비슷하다.
복리후생비 범위 확대… 현물은 제외숙박비와 식비, 교통비 등 현금으로 지급되는 모든 복리후생비도 내년부터는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된다. 최저임금의 7%에 해당하는 11만원가량을 넘는 금액이 대상이다. 상여금과 마찬가지로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연봉 2500만원을 넘게 받는 근로자들은 지금처럼 기본급과 직무수당만 최저임금에 포함된다. 기본급 157만원에 월 상여금 50만원, 식비와 교통비로 월 20만원을 받는 근로자는 지금은 최저임금에 턱걸이 수준(기본급 기준)이지만 개정안 적용을 받으면 최저임금 산정기준 금액이 약 177만원이 되면서 최저임금 기준을 훨씬 넘어서게 된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환노위 여당 간사)은 “고액 연봉 근로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수혜 대상이 되는 것을 막으면서 산입범위 확대로 저임금 근로자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게 개편 취지”라고 설명했다.
상여금과 복리후생 수당의 초과 기준은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낮아진다. 상여금은 내년 25%에서 해마다 5%씩 줄고, 복리후생 수당은 내년 7%를 시작으로 2020년 5%, 2021년 3%, 2022년 2%, 2023년 1%로 낮아진다. 이렇게 되면 2024년부터는 모든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 수당이 최저임금에 산입된다.
‘고삐’ 풀린 최저임금산입범위 확대를 계기로 정부의 ‘최저임금 시급 1만원’ 정책에는 오히려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환경노동위원장을 지낸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제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가 정비됐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산입범위 조정 없는 시급 1만원 달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당초 정부의 ‘시급 1만원’ 공약은 산입범위 조정을 전제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동계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더욱 거세질 공산이 크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상여금과 숙식비 등 복리후생 수당을 산입하면 최저임금을 10% 인상할 경우 2.5~3.0%포인트가량 인상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뒤집어 보면 노동계로선 그만큼의 추가 인상 주장 요인이 되는 셈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입범위 조정은 지난해 16.4% 인상했을 때 동시에 이뤄졌어야 할 부분”이라며 “이번 개편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일정 부분 상쇄함과 동시에 내년 최저임금을 대폭 올릴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는 양날의 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