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밀레니엄포럼] 홍종학 장관 "中企정책 전면 재검토… '개방형·민간 주도·집중 지원'으로 전환"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벤처기업 지원에 대기업 펀드 등 적극 활용
대학-혁신형 중소기업, 협업하는 방안 논의
'적합업종' 일정기간 지나면 자생력 확보해야

공정위는 채찍, 중기부는 중소기업 대변인 역할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8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 참석해 기조강연을 한 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 홍 장관,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학영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28일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중소기업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장관이 제시한 방향은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무조건 지원에서 데이터에 근거한 실효성 있는 지원으로’ 등이었다. 1964년 시작한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새로운 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국 경제가 회복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게 홍 장관의 생각이다.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하도록 적극 지원하고, 벤처캐피털 시장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모태펀드 등을 통해 간접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연구개발(R&D) 지원에 대해서도 그는 “중기부의 R&D 지원 목표는 성공률을 낮추는 것”이라고 했다. 비교적 쉬운 과제에 도전해 정부 지원금만 타가는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정부의 기업 지원 정책을 연구하다 보면 지원받은 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좀비기업(한계기업)’이 연명하는 것도 발견한다. 중소기업 지원이 복지 성격을 띠면서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정부의 지원 정책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지원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중기부는 소상공인과 혁신형 중소기업을 나눠 지원하려고 한다. 데이터에 기초해 복지적 차원에서 지원할 소상공인과 육성이 필요한 혁신형 중소기업을 나눠 다른 정책을 써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신 교수=기업과 정부뿐 아니라 대학의 역할도 중요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스탠퍼드대)와 중국 중관춘(칭화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대학은 과도한 규제 때문에 세계적인 대학과 경쟁하기 어려운 처지다.

▶홍 장관=판교 테크노밸리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지만 가까운 대학이 없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대학과 혁신형 중소기업이 협업하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대학마다 ‘메이커 스페이스(창업공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대학들이 지원 대상을 구성원으로만 좁히는 한계가 있다. 지역사회와 대학이 협업하면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김수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민간 주도의 혁신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

▶홍 장관=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면 정부도 함께 지원하겠다. 중소기업 R&D 지원 정책은 ‘팁스(TIPS)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방식으로 대기업 등 민간에서 유망한 창업팀을 선별하고 투자하면 정부가 R&D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역설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합업종 이후 3년 동안 실적을 보면 중소기업의 성장이 눈에 띄게 좋아지긴 했다. 하지만 산업 경쟁력은 반대로 떨어졌다고 한다.▶홍 장관=적합업종 선정이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는 적합업종 지정을 해제하고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경쟁력이 높아진다. 보호해도 성과가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노대래 법무법인 세종 고문=독일의 산업정책은 중소기업 보호보다 R&D 지원에 중점을 둔다. 경쟁력 강화를 핵심으로 본다. 반면 한국은 적합업종 지정 등 지나치게 세분화하고 지원 중심으로 빠지는 게 아닌가 싶다. 중기부의 정책도 공정거래위원회가 할 일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중소기업 기술 탈취나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등이 그렇다.

▶홍 장관=상생협력 등 대책을 세울 때 공정위와 중복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공정위가 근본적으로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채찍 역할을 한다면, 중기부는 피해자인 중소기업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중기부는 공정위보다 인원이 많고 지방조직도 있다. 중소기업이 불공정을 호소하기 더 편한 곳이다. 중기부가 나서서 조정하고 안 되면 공정위가 나선다.

▶노 고문=정부가 대기업을 규제한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살아나는 게 아니다. 정당한 납품단가도 정부가 규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홍 장관=정부가 납품단가 등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 100% 동의한다. 다만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장부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관행이다. 말이 안 된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경우 비밀유지협약서를 쓰게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대등한 관계에서 계약을 맺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런 사안에 개입하는 것은 필요하다.

▶김기영 한국기술교육대 총장=중소기업 과제 평가와 관련한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정부가 발주한 과제 평가나 지원 사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이거 다른 나라에서 해본 거냐”는 질문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사업에 왜 이런 질문이 나오나. 한국에서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first mover)이 나오기 힘든 문화다. 중소기업 평가를 혁신성장이 가능하도록 바꿔가야 한다.

▶홍 장관=중기부에서 ‘규제해결 끝장캠프’라는 것을 해보면서 느낀 게 많다. 족보(과거 적용 사례)가 없는 신기술 제품이 나오면 관련 부처 공무원이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어쩔줄 모른다. 이상한 일도 봤다. 전동킥보드 같은 e모빌리티(전기를 동력으로 한 1인용 이동수단)가 대표적인 사례다. 현행법에서는 전동킥보드도 오토바이와 같은 이륜차로 분류된다. 그래서 차안에서 헬멧을 써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앞으로 공무원들이 ‘법률에 규정이 없어서 안 된다’며 새로운 시도를 막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이상만 중앙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청년 취업자들이 중소기업에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은 매력이 떨어지는 탓도 크다. 징검다리 휴일에 대기업 직원은 쉬지만 중소기업 직원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단순한 연봉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다. 이런 의식·문화적인 부분까지 고려해서 정책을 세워야 한다.

▶홍 장관=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 취업자에게 대기업 취업자와의 임금 격차를 정부가 지원해주고 있다. 이를 포함해 대·중소기업 간 차별적인 요소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는 얘기에 공감한다. 지방에 있는 공업단지에 가보면 거주 여건도 좋지 않다. 임금 격차를 줄이면서 거주 여건, 근무 환경과 문화 등을 개선하는 데 주력하겠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대학생 면접 때 청년실업의 원인과 해법에 관해 물어봤다. 상당수가 대기업이 고용을 안 늘려서라고 답했다. 정부가 일자리 문제의 원인으로 대기업을 지목하는 것과 비슷했다. 청년들도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홍 장관=청년들이 안정적인 일자리에만 몰리는 현상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다. 우수한 청년들이 공무원과 대기업으로 몰리는 것은 그만큼 창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창업하고 실패할 확률이 90%가 넘는다. 결국 창업 활성화는 재기 가능성과 연관이 깊다. 창업한 뒤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도록 ‘칠전팔기’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정부가 혁신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혁신 중소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전통 중소기업의 존속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중소기업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 혁신 중소기업으로 꼽히는 게임개발 업체도 위기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중국에 경쟁력이 밀린다. 미국의 R&D 인력은 근로시간 규제에서 예외 조항을 둔다. 최저임금 및 근로시간 단축 문제와 관련해 다른 부처와의 협상에서 중기 입장을 대변해 달라.

▶홍 장관=미국은 1980년대 후반 경제가 침체기에 빠지자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했다. 일본의 도요타 사례 등을 참고한 뒤 자신들만의 해결책을 찾았다. 핵심은 ‘노동자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생각하는 노동자가 돼야 한다’였다. 그런 고민의 결과로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세계적인 IT 기업이 등장했다. 한국도 노동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세계적으로 스마트 공장이 대거 도입되면 전통 제조업은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론’을 언급했다. 노동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 등에서도 기업 규제가 많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부처 장관들이 적절한 목소리를 내줘야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것 아닌가.▶홍 장관=중기부 차원에서 산업 현장을 직접 찾아가 목소리를 듣고 있다. 문재인 정부 내각의 팀워크도 좋다. 중소기업이 호소하는 현장의 어려움을 자세하게 전달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대책으로 나온 일자리안정자금 정책이 부족하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고, 이번 추가경정예산에도 반영됐다.

이우상/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