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타차 열세 따라붙은 '승부사本色'… 김효주 '천재의 부활'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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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여자오픈 연장 혈투 끝에 아쉬운 준우승“‘우승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아쉽네요.”
한때 7타차 앞선 쭈타누깐
후반 실수 연발 추격 허용
한타 한타 따라간 김효주
연장 네 번째 홀 보기로 '분루'
"아쉽지만 자신감 되찾아"
통산 9승 수확한 쭈타누깐
20년 전 박세리에 연장서 진
태국 추아시리퐁 패배 설욕
김효주(23·롯데)가 4일 미국 앨라배마주 쇼얼크리크 골프장(파72·6696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총상금 500만달러) 최종 라운드를 마친 뒤 미련이 남는 듯 말했다. 6타 차를 따라잡아 우승 문턱까지 갔던 그는 연장전에서 패배했다. 이날 김효주와 연장 승부를 벌인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은 유독 우승 경쟁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과 자주 마주쳤다. 그가 거둔 지난 여덟 번의 LPGA투어 우승 중 단 한 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한국(계) 선수들이 준우승을 차지했다.쭈타누깐이 한국 선수들과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선수 생활을 통틀어 가장 악몽에 남을 만한 순간에도 한국 선수가 있었다. 2013년 2월 태국에서 열린 LPGA투어 혼다 타일랜드에선 2타 차 선두로 18번홀(파5)에 들어섰다가 실수를 연발하며 트리플보기를 기록했다. 품에 안은 것이나 다름없던 우승컵을 박인비(30·KB금융그룹)에게 헌납해야 했다.
아쉬웠던 2홀 합산 방식 연장전
김효주와 쭈타누깐 사이에도 2013년 박인비 때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기운’이 흘렀다. 김효주는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쭈타누깐에게 6타의 열세를 안고 경기를 시작했다. 전반 9개 홀이 끝난 뒤 격차는 7타로 벌어져 있었다. 그러나 김효주는 꾸준히 자신의 경기를 이어갔다. 후반에 2타를 더 줄였고 트리플보기 1개와 보기 3개(버디 1개)로 무너진 쭈타누깐과 기어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미국골프협회(USGA)가 주관하는 이번 대회 연장은 14, 18번홀 2개 홀 합산으로 치러졌다. 두 홀 합산으로 승부가 나지 않으면 서든데스로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었다. 김효주는 첫 홀인 14번홀에서 6m 거리의 긴 버디 퍼트를 넣었고 쭈타누깐은 2.5m의 짧은 버디 퍼트를 놓쳤다. 일반 대회라면 김효주의 우승이었다. 하지만 18번홀에서 이어진 승부에서 김효주는 쭈타누깐에게 추격을 허락했다. 연장 네 번째 홀인 18번홀에서 파를 잡은 쭈타누깐에게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김효주가 우승했더라면 한국 선수의 이 대회 열 번째 우승과 한국(계) 선수의 LPGA투어 통산 200승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다음 대회를 기약해야 했다. 결과는 아쉽지만 김효주 개인에겐 큰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친언니 팀 합류로 심리적 안정감 찾아김효주는 2014년 LPGA투어 메이저대회 에비앙챔피언십에서 비회원 자격으로 참가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2015년 후원사 롯데와 5년간 65억원이라는 거액의 계약을 맺으며 건너간 미국 무대에서 데뷔 시즌 JTBC 파운더스컵 정상에 오르며 우승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후 기복이 심했고 2016년 LPGA투어 개막전 퓨어실크바하마클래식을 끝으로 침묵했다. 올 시즌에는 8개 대회에서 세 차례 커트 탈락하는 등 최고 성적은 공동 24위에 그쳤다.
김효주는 이번주 전성기를 연상하게 하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나흘 평균 26.75의 퍼트 수를 기록했고 페어웨이는 56번 중 다섯 차례만 놓치며 90%가 넘는 성공률을 보여줬다.
김효주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친언니의 팀 합류다. 최근 친언니와 함께 투어를 뛰며 안정을 되찾고 있다. 타지 생활에 지친 동생에게 친구이자 멘탈 코치 역할을 하고 있다.김효주는 “최근 성적이 좋지 않다가 조금씩 좋아졌고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좋은 성적을 내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며 “매우 아쉬운 연장 승부였지만 이번 대회에서 자신감을 찾은 것 같고 남은 경기에도 좋은 감을 살려 임하겠다”고 말했다.
쭈타누깐은 이번 우승으로 LPGA투어 통산 9승이자 메이저대회 2승째를 수확했다. 20년 전 이 대회에서 연장전 끝에 박세리에 이어 준우승에 머물렀던 제니 추아시리폰(태국)의 패배를 설욕하며 태국 선수로는 처음 이 대회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