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1000원짜리 물건 팔아 독립운동가 유물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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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보물마트 대표서울 시흥동 보물마트의 이종희 대표(62)는 지난달 말 충남 예산에 각종 유물전시관과 우리갤러리를 열었다. 노점상을 거쳐 ‘1000냥백화점’으로 성장 가도를 달린 그가 이제는 전시관과 갤러리까지 개관했다. 기업인 출신이 단지 문화 후원에 그치지 않고 문화산업에 직접 뛰어들게 된 사정을 들어봤다.
인천 시장서 '1000냥 백화점' 히트
아이디어 상품으로 차별화 성공
"혼자보기 아까워 갤러리 열어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 알릴 터"
대개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돈 많은 사람이나 예술인의 전유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새로 문을 연 우리갤러리는 노점상 출신 유통인인 이종희 대표가 세운 곳이다. 지난 5월22일 부처님오신날에 개관한 이곳은 가야산과 덕숭산이 팔을 벌리고 있는 품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지대가 높아 계곡 사이로 멀리 내포신도시가 내려다보인다. 덕산은 이 대표의 고향인 해미와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개관일에는 기업인 등 5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이 갤러리는 몇 가지 면에서 특이하다. 축대가 다듬이돌 200여 개로 구성돼 있다. 중간에 있는 작은 폭포에선 우물을 파서 펌프로 길어올린 물이 흘러 내린다. 약 4300㎡ 규모의 대지 한복판에 가정집이 있고 양쪽에 두 채의 건물이 있다.
서쪽 건물은 전시관이다. 독립운동가들의 유품이나 기록물, 과거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책자 기록물 등이 전시돼 있다. 주로 충청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나 이 지역 관련 유물들이다.
동쪽 건물은 갤러리다. 각종 그림, 청자주전자, 나선형 주병, 국화문주병 등이 있다. 이 대표가 평생 발품을 팔아 모은 것들이다. 그는 미술가가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유물과 옛것에 대한 애정이 많다. 그는 돈을 버는 대로 유물을 수집했다. 이 대표가 이날 펴낸 자서전 《이종희 부부의 1000냥 인생신화》에는 이런 내용이 구구절절 적혀 있다.
지금 60대에 접어든 사람은 누구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을 듯하다. 이 대표도 마찬가지다. 고향에서 10대 중반에 상경한 그는 버스회사에서 일했다. 작업복을 입고 차밑으로 기어 들어가 기름냄새를 맡으며 정비를 맡았다. 당시엔 버스 고장이 많아 정비가 중요한 직업이었다. 그 뒤 운전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20대 중반부터 액세서리 노점상을 시작했다. 영등포역앞과 역곡역 주안역 등 수도권 지하철 1호선역이 그의 주된 활동 무대였다. 파출소에 끌려가고 깡패에게 수난을 당해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가난 극복’에 대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시골집 장남인 그의 어깨에 온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었다. 결혼한 뒤엔 부부 노점상으로 변신했다.장사의 기본에 눈을 뜬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에서 본 ‘100엔숍’을 벤치마킹해 세운 ‘1000냥 백화점’이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종잣돈은 운좋게 당첨된 전화번호 ‘2424’번을 판 돈으로 마련했다. 하루아침에 점포를 얻을 순 없었다. 궁리 끝에 빈 점포를 며칠간 빌리기로 하고 찾던 중 인천 석남동 거북시장의 33㎡짜리 점포를 며칠간 얻기로 계약했다. 이른바 ‘깔세’다.
미리 시장을 훑어 1000원에 팔 수 있는 물건을 봐뒀다. 공구 문구 완구 세제 행주 잡화 등 680여 종을 모두 1000원 한 장에 판다는 내용을 신문 전단으로 뿌렸다. 1991년 4월10일 오전 9시. 이 대표 부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개점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손님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아닌가. 오전 10시가 되자 봇물 터지듯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 뒤 도매상을 거쳐 2003년 서울 시흥동 은행나무사거리 부근에 보물마트를 열었다. 대형마트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 다른 매장에선 구하기 힘든 물건들로 채우자고 다짐했다. 문구 완구 스포츠용품 생활용품 아이디어상품 등 5만여 점을 전시했다. 이 대표는 “탱크와 신선식품 빼고 다 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며 “지금 갖춘 상품은 6만 종이 넘는다”고 말했다.그 뒤 골동품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대학원에서 골동품과 유물에 대해 공부하면서 안목도 길렀다. 이 대표는 “평생 수집한 유물을 혼자만 보는 게 아까워 갤러리와 전시관을 열었다”며 “독립운동가들의 손때 묻은 기록과 물건을 통해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