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우의 부루마블] '배그' 제대로 즐기려면, 얼마짜리 PC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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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사양 부품 값만 '90만원' 수준#지난 5일 오후 12시 홍대역 맥도날드. 40대 회사원 A씨는 "중학생 아들이 중간고사 잘 봤다고 배틀그라운드 PC 사달라는데 얼마면 될까?"라며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미 온라인 상에서도 알아봤지만 CPU, 메모리, 그래픽카드 등에 따라 결정되는 가격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다. 동료 B씨는 "글쎄, 150만원 정도면 되지 않을까, 아닌가"라며 다소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 또 다른 동료 C씨는 "에이, 요즘같은 시대에 그렇게 많이 안 비싸. 아무리 고사양 게임이더라도 100만원이면 충분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동료들의 각각 다른 의견에 A씨의 머릿 속은 더 복잡해졌다.
27인치 144Hz 모니터 포함 '130만원' 정도
배틀그라운드는 한국 게임사 블루홀의 자회사인 '펍지주식회사'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하는 1인칭 총쏘기 게임이다. 이 게임은 100명의 이용자가 섬에 떨어져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우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지난해 출시된 배틀그라운드의 전 세계 판매량은 4000만장. 비디오게임(콘솔)도 400만장 넘게 팔렸다. 배틀그라운드의 인기에 힘입어 블루홀은 지난해 매출 6665억원, 영업이익 2517억원을 기록했다.
배틀그라운드를 서비스하는 카카오게임즈는 권장사양으로 ▲윈도우 7 64비트 이상 ▲CPU 인텔 i5-6630k ▲메모리 16GB ▲그래픽 지포스 GTX 1060를 권한다. 부품 값만 약 90만원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7일 오후. 용산역 전자상가로 향했다. 조카 PC를 사러왔다는 말에 한 점원은 다양한 옵션의 PC를 권했다. '배그국민·배그치킨·배그 풀옵션·배그 실속형·배그 에디션·배그 최고급…'. 종류만 수 십 종에 달했고 가격도 47만9000원에서 210만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점원은 "CPU는 인텔 7세대, 메모리는 16GB, 그래픽카드는 GTX 1060 이상이 필요하다"며 "120만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발길을 돌리는 기자에게 그는 "다른데 가면 메모리 12GB, 그래픽 1050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하는데 그거 다 사기다. 여기서 사지말고 인터넷에서 사라"고 귀뜸했다.인텔 i5-4570, 메모리 12GB, 지포스 GTX 960을 추천하는 곳도 있었다. 약 55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40대로 추정되는 점원은 "조금 끊길 수 있지만 못 할 정도는 아니다"며 "홈페이지에 나온 최소사양 보다 높다"고 했다. 실제 배틀그라운드 홈페이지에는 최소사양으로 ▲CPU 인텔 i5-4430 ▲메모리 8GB ▲그래픽 지포스 GTX 960이 제시돼 있다.
몇 군데 더 가봤지만 비슷한 답변이 반복됐다. 안 살 것처럼 보였는지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는 곳도 있었다. 평균적으로 100~130만원이 많았다.
게임사에 다니는 지인에게 물었다. 그는 가성비가 좋은 적정사양과 일반인이 구입할 수준의 최고사양을 추천했다. 가성비가 좋은 적정사양으로는 인텔 i5-8400, 메모리 16GB, 그래픽카드 지포스 1060, 파워 600W, 10만원대 메인보드를 추천했다. 90~100만원 정도로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는 "게임이 요구하는 최소사양에 가깝지만 큰 무리없이 즐길 수 있는 수준"이라며 "이것보다 낮은 사양을 구입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차라리 PC방에 가는 게 낫다"고 했다.
최고사양으로는 인텔 i7-8700k, 메모리 16GB, 그래픽카드 지포스 1070ti 이상, 파워 650W 이상, 20~30만원대 메인보드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더 고가의 제품도 있지만 사실상 무의미하다. 이 정도 구입하려면 180만원에서 210만원 정도가 들 것"이라 덧붙였다. 이렇게 비싼 PC를 쓰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많다. 아주 많다. 주변에도 꽤 있다"고 말했다.
PC 사양 만큼 모니터 선택도 중요하다는 조언도 있었다. 중견 게임사 관계자는 "FPS(1인칭 총쏘기 게임)는 한 눈에 적의 움직임을 살피고 대응해야 한다. 이 때문에 너무 큰 모니터는 추천하지 않는다"며 "24~27인치 크기가 적당하다. 주사율(scan rate)도 144Hz 이상은 돼야 빠른 움직임을 끊김 없이 선명하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주사율은 1초에 볼 수 있는 정지 이미지의 수를 말한다. 144Hz 주사율은 1초에 144장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27인치 크기의 144Hz 주사율 모니터는 약 30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한편 배틀그라운드의 높은 권장사양이 게임 확산을 저해하는 요소가 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게임사 한 관계자는 "배틀그라운드가 잘 만든 게임인 건 분명하지만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와 비교해 너무 무거운 게 사실"이라며 "포트나이트는 별도의 그래픽카드 없이 내장 그래픽로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 북미와 유럽 등에서 포트나이트가 인기 있는 이유"라고 했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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