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 수사' 놓고 갈라진 사법부… 국정조사·탄핵 대안되나

일부 대표판사들도 주장…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서 논의 여부 주목
사진=연합뉴스
양승태 사법부 시절의 재판거래 의혹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놓고 법관들 의견이 '수사 촉구'와 '수사 불가'로 극명하게 갈린 상황에서 국회의 국정조사를 대안으로 삼자는 의견이 사법부 일각에서 나왔다.검찰 수사는 사법부가 고발한 사건을 결국 사법부가 다시 판결하는 결과를 낳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고, 사법부 스스로 모든 의혹을 규명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국회가 조사를 벌여 문제 법관이 있다면 탄핵 절차를 밟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10일 법원 등에 따르면 이 같은 주장은 민중기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지난 8일 기자들과 한 오찬 간담회에서 처음 언급했다.

민 법원장은 재판거래 의혹의 후속 조치와 관련해 "국회가 나서서 진상규명을 하는 방법이 있다.조사를 하고 문제가 있는 법관은 헌법상 탄핵을 할 수 있다"며 "내부 징계는 정직까지가 한계"라고 말했다.

민 법원장의 발언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개인적 의견을 피력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의견과 가능한 상황에 대해 원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속한 일부 대표판사들은 국회의 국정조사와 법관 탄핵 방안을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국회에 조사를 맡겨야 한다는 의견을 지닌 법관들은 아직 의혹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수사를 맡기는 것보다는 일단 국회의 국정조사를 통해 의혹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근거로 삼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행정처 문건에 담긴 '재판거래 의혹'이 실행됐는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문건 작성자에게 어떤 혐의를 적용할지도 확정할 수 없으므로, 검찰에 고발하기보다는 의혹의 사실관계를 국회에서 확실히 밝혀야 한다는 취지다.

국정조사는 재적 국회의원 4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진행할 수 있으므로 실행 가능성이 크다.조사대상 기관에 자료제출 요구권한은 물론 증인과 감정인, 참고인 등을 강제로 소환해 조사할 권한도 있어 진상규명에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조사과정이 공개되기 때문에 여론의 신뢰를 얻으면서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출신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이 수사하는 것은 행정부가 법원을 누르는 듯한 모습이 연출될 수 있어 부적절할 수 있다"며 "중립지역에 있는 국회가 조사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조사 등을 통해 문건 작성 관여자 등에게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날 경우에는 탄핵소추가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행 헌법재판소법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뿐만 아니라 판사 등 법으로 정한 공무원에 대한 탄핵소추도 가능한 것으로 규정한다.

임기 중에는 해임될 수 없는 판사의 비위 행위에 대한 비상 조치로서 탄핵제도를 둔 것이다.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는 대통령과는 달리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재적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의결된다.

대통령의 탄핵소추는 재적의원 과반수가 발의하고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의결된다.

의결 후에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심판과 동일한 절차로 심리한 후 결정을 내린다.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가 개원한 후 지금까지 두 차례 있었다.

1985년 유태흥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가 발의됐지만 본회의에서 부결돼 탄핵심판 절차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2009년에도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가 발의됐지만 회기 종료 때까지 처리되지 못하면서 자동 폐기됐다.

다만 국회 국정조사 방안을 오는 11일로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실제로 논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논의안건이 지난 5일 미리 정해졌기 때문이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미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전국법관대표회의 선언 의안'과 '청와대의 판사 파면청원 결과 통지에 대한 반대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성명서 채택 의안' 등 7개 안건을 확정한 상태다.

국정조사 방안 등이 논의되려면 회의 현장에서 추가 안건 상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하루짜리 회의라는 시간 제약을 고려하면 쉽지 않아 보인다.일각에서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이미 정한 안건을 놓고 토론한 뒤 채택된 의견을 선언하는 의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국정조사나 판사탄핵 방안을 함께 논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