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美·北 회담 이후 남북관계 어떻게 변해갈까
입력
수정
지면A26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12일 열린다. 당사국과 주변국의 실리게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주말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동맹국들과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조율했다. 중국도 곧이어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OC) 정상회의에서 북한에 대한 기득권을 러시아와 재확인했다.
변수가 많고 의제도 워낙 큰 것이어서 단 한 차례 회담을 통해 조율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국제 사회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추후 협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미·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관계(경제협력과 통일)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남북이 분단된 것은 1945년 해방을 기점으로 한다면 70년이 넘는다. 독일보다 무려 25년이 길다. 체제부터 통일에 들어간다면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 체제를 유지한 상황에서 예술, 체육, 문화 행사 등을 통해 남북 관계(특히 인식 차)를 개선시킬 수 있는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사전 정지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경제협력 단계에 들어간다. 도로, 철도, 통신시설뿐만 아니라 동·서독 통합 과정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항만 등에 걸쳐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시설을 재정비해 사용할 수 있으나 남한 기준에 맞춰 신설하는 쪽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SOC가 확충되면 그 기반 위에 생산요소와 북한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물자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초기에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 북한은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있고, 한국은 부담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어 이 단계의 성공 여부가 이후 남북 관계 진전과 속도를 결정지을 변수다.
경제적 측면에서 최종 단계는 화폐를 통일시키는 작업이다. 핵심은 남북 화폐 간 교환비율을 설정하는 문제다. 독일의 예처럼 화폐교환비율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북한 주민과 남한 국민의 명암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동·서독 통합 때는 동독 화폐가 현실 가치보다 높은 수준으로 교환되도록 합의해 동독 국민이 크게 혜택을 봤다.
경제협력 성과가 가시화되면 다음 단계는 체제 통합 작업이다. 한반도 전역에 적용될 수 있는 헌법 제정과 국민 동의를 거쳐 정치적으로 통합돼야 한다. 남북 협력과 통일의 마지막 과정은 사회 통합이다. 70년이 넘는 분단기간을 감안하면 모두 쉽지 않은 과제다. ‘프로보노 퍼블리코(공공선)’ 정신과 국민의 희생이 따라야 해결될 수 있다.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과정에서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는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미·북 수교 등으로 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차이나 패싱’ 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신흥 강대국이 급부상하면서 기존 강대국이 느끼는 두려움으로 전쟁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기원전 5세기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27년간 치렀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술한 투키디데스의 이름에서 비롯된 용어다. 2015년 9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언급한 이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이미 이 함정에 빠져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시각도 많다. 출범 첫해 트럼프 정부가 추구했던 달러 약세에 맞서 시진핑 정부는 위안화 약세로 맞대응하는 과정에서 ‘환율 전쟁’ 위기에 몰렸다. 올해 들어서는 ‘관세 전쟁’이란 용어가 나올 만큼 한 단계 높아지다가 최근에는 미래기술 산업 주도권을 놓고 ‘첨단기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한반도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운명이 엇갈린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19세기 이후 일본이 급부상함에 따라 당시 강대국이었던 중국(청일 전쟁), 러시아(러일 전쟁), 미국(태평양 전쟁)과 전쟁을 잇달아 치르는 과정에서 ‘일본 식민지 시대’와 ‘남북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국제관계는 냉혹하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에 미국, 중국, 북한이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수(數)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중재자 역할’이다. 이 역할을 잘한다면 우리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반면 반대의 경우에는 의외로 큰 시련이 닥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