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드라마에서 왜곡된 저축은행 이미지

정지은 금융부 기자 jeong@hankyung.com
“요즘 TV를 켤 때마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갑니다.”

최근 만난 한 저축은행 대표는 축 처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요즘 방영 중인 TV 드라마에서 저축은행의 이미지가 ‘난도질’ 당하고 있다는 토로가 이어졌다. 주말에 방영되는 tvN의 ‘무법 변호사’에선 기업인의 비자금 창구 역할로 기성저축은행 대표라는 인물이 나오고, 수목드라마인 SBS ‘스위치’에는 전직 국회의원의 돈줄로 케이저축은행 대표가 그려진다. 1주일 중 꼬박 나흘은 저축은행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룬 드라마가 나오는 것이다.이 두 편 외에도 그동안 드라마에 나온 저축은행은 대부분 나쁘게 그려지곤 했다. 비리를 저지르거나 주인공의 악행을 돕는 식이 많았다. 이런 드라마가 반복돼 나오기 때문에 ‘저축은행은 나쁜 곳’이란 인식이 시청자의 의식에 쌓여간다는 게 저축은행업계의 우려다. 특히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이후 사업 쇄신, 이미지 개선에 공들여 온 업계 종사자들에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과거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반성은 계속돼야겠지만 요즘은 많이 개선됐다”며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이런 부정적 인식 때문에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저축은행 직원이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저축은행에 취업할 때 주변에서 최소 한 번 이상 만류하는 것을 겪어보지 않은 직원도 거의 없다. 심지어 드라마 속 악역을 맡았던 연예인이 현실에서도 “왜 그렇게 나쁜 짓을 하고 사느냐”는 질책을 듣고 있어 길거리에 나서기가 무섭다고까지 할 정도다.

물론 드라마엔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특정 직군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묘사는 신중해야 한다. 드라마에서 형성된 부정적 인식으로 피해를 보는 업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어서다. 저축은행은 상대적으로 신용이 낮은 개인이나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나름 역할을 하는 금융회사다. 지난해 말 기준 종사자도 9000명을 웃돈다. 드라마 속 재미를 위해 실추당한 이들의 이미지는 누가 책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