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장벽' 그라피티 날벼락… 왜 자꾸 이런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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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서 기증 받아 청계천에 설치한 장벽, 페인팅·낙서로 훼손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화빌딩 앞에 있는 ‘베를린장벽’이 그라피티로 훼손됐다. ‘거리의 예술’을 빙자한 그라피티 예술가의 무분별한 행동에 소중한 유적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처벌하라" 국민청원 거세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무분별한 행동에 문화재 훼손"
지하철·공장 등 잇단 그라피티
새벽에 이뤄져 단속에 어려움
‘히드아이즈(HIDEYES)’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페인팅 아티스트 정태용 씨는 청계천로변의 베를린장벽에 그라피티 작업 후 관련 사진(사진)을 지난 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 장벽은 독일 통일 당시 철거돼 마르찬 휴양 공원에 전시됐던 유물이다. 베를린시가 2005년 청계천 복원을 기념하고 한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로 서울시에 무상기증했다. 높이 3.5m, 폭 1.2m, 두께 0.4m의 베를린장벽 3쪽과 마르찬 휴양 공원의 가로등, 벤치 등을 전달받은 서울시는 100㎡의 부지에 ‘베를린광장’을 조성했다.정씨의 그라피티 작업으로 인해 서독 시민들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던 장벽에는 빨강, 노랑, 파랑의 페인트가 칠해졌다. 엄혹한 동독 사회를 단적으로 상징했던 깨끗한 벽면은 ‘날 비추는 새로운 빛을 보았습니다. 내 눈을 반짝여줄 빛인지’ ‘Look Inside’ 등의 문구로 훼손됐다.
정씨는 지난해 3월 히드아이즈라는 복합문화브랜드를 설립한 아티스트다. 2014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아트살롱페어에 참여하고 다양한 패션브랜드와 협업하는 등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정씨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현재와 앞으로 미래를 위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고 이번 그라피티의 의의를 설명했다.
하지만 역사적 의미가 담긴 공공조형물을 훼손하는 행위는 그라피티여도 범죄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그라피티를 명목으로 공공시설물의 가치를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돌발행동을 한 정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도 지난 8일 게시돼 9000여 명(10일 기준)이 동의했다.그라피티를 둘러싼 논란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영국인 형제가 한국에 입국해 지하철 6호선 전동차에 ‘SMTS’ ‘SMT’ 등 대형 글자를 그린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다. 사회적 예술가 홍승희 씨도 2015년 홍익대 부근 한진중공업 소유 공사장 가벽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한 그라피티를 그려 재물손괴죄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태원, 홍대 등 그라피티 문화가 성행하는 곳에서는 ‘그라피티 홍수’에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공공시설물이나 개인 소유물에 피해를 본 주민, 상인들의 민원도 이어지고 있다. 주로 새벽 시간에 그라피티가 이뤄져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는 게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의 설명이다. 남의 건물이나 공공시설물 등에 허가 없이 그라피티를 그리는 행위는 재물손괴죄 등으로 3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