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美·北 정상회담 이후 國益 찾기

北 핵무기 및 ICBM 폐기란
'트럼프식 합의' 가능성 큰
싱가포르 미·북 회담
안보에 미칠 영향 도외시한 채
경제적 보상과 미군 역할 조정
서두를까 걱정이다

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

12일 싱가포르 카펠라호텔에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 회담 결과에 전문가들은 미국이 그동안 주장해온 ‘원샷 빅딜’과 ‘빅뱅 접근’이 수정됐으며, 대신 ‘큰 틀의 단계적 비핵화’를 내용으로 ‘원칙적인 비핵화’에 합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전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북한의 김영철과 회동한 직후 기자들에게 “6·12 회담은 (북한 비핵화) 과정의 시작”이며 “한 번 만남으로 안 된다”고 말한 것과 판문점에서 미·북 실무회담이 결론 없이 끝난 것에 기초한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비핵화 원칙은 고수되겠지만, 방점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제거라는 미국의 국익 확보에 찍힐 수도 있을 것이다. 단계적 비핵화 시간표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나 실무급 수준의 회담으로 넘겨질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말로 맞춰진 핵시설 폭파나 ICBM 반출이라는 북한의 성의 표시에 따라 노벨평화상 후보와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즐길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고자 할 것이다. 결국 북한 비핵화에 실패해도 실무협상 문제로 돌릴 수 있고 자신은 미국에 가해진 핵 위협을 제거하는 큰 업적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는 ‘트럼프식 합의’를 성취할 것이다.

대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조건으로 체제를 보장받는(CVIG)’ 빅딜을 성사시키려 할 것이다. 대북(對北) 제재 해제와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 제거, 미국과 외교관계 정상화, 그리고 대북 원조를 받아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와 김정은은 어떤 합의에 이르든 힘찬 악수와 다정한 포옹으로 회담의 성공을 자축하고 사진 찍기 행사에 몰두할 것이다. 종합하면 미국은 북한의 핵 공격으로부터 ‘내 나라의 안전’을,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내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는 구도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모두에게 ‘나쁜 딜’이 아니고 ‘굿 딜’이 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정부의 과제는 대한민국 국익 찾기다. 미국의 ‘김정은 체제 보장’ 약속이 내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미·북의 싱가포르 합의에 따라 한·미 합동군사훈련 축소, 주한미군의 점진적 감축,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핵우산 철거를 예상할 수 있는데 정부가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이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대안이라면 이성적 해결책이 아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자랑하는 중단거리 미사일과 1000여 개에 달하는 장사정포와 방사포를 가지고 있고 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인민군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대폭 감축이나 제거가 아니고서는 대한민국에 오는 실질적인 군사적 이득은 기대하기 힘들다. 도리어 주한미군 감축과 한·미 합동군사훈련 축소·폐지로 대북·대중 전력의 약화 내지 안보 재앙을 초래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물론 평화론자들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데’ 무슨 내 나라 국익과 ‘자주국방’을 거론할 필요가 있는지 반문(反問)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평화가 선언이나 종이에 서명하는 것으로 유지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나아가 지도자는 국가의 생존이라는 국익을 평화보다 먼저 고민해야 하는 존재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핵무기 제거와 운반 수단 제거를 한국의 이익보다 우선시함은 당연하다. 김정은도 세계를 상대로 자존심을 구기지 않고 제값 받고 핵무기를 팔려 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과 북한 국익 추구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북 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북한의 거래 내용이 국익에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는 관심이 없고 북한 핵무기 및 ICBM 폐기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대신 지급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또 ‘김정은 체제 보장’을 위해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 등을 앞장서서 실현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내 나라 국익과 국방이 먼저다.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미국과 세계로부터 대접을 받는 유일한 이유는 북한의 경제력이나 선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주변 국가를 위협할 수 있는 핵 능력과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자신의 능력(군사력)에 의존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평화협정이 주한미군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화·평화론자들과 미군에 기대 자주국방을 게을리한 보수가 새겨들어야 할 경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