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남발하는 檢… '구속 만능주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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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의혹' 10건 중 9건 기각‘노조 와해’ 혐의를 받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에 대한 두 번째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또 기각됐다. ‘구속 만능주의’에 빠진 검찰이 혐의에 대한 충분한 입증 없이 여론몰이식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여론 의식한 '보여주기식' 비난도
"피의자 구속, 수사 성과로 인식
잘못된 관행 개선 목소리 높아"
박범석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부장판사는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윤석열 지검장·사진)이 두 번째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지난 11일 저녁 늦게 기각했다. 이로써 검찰이 지금까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의혹을 받는 피의자들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 10건 중 9건이 기각됐다. 기각률로 따지면 90%다. 이는 지난해 검찰의 구속영장 기각 비율(25.1%)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법조계에서는 기각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검찰이 수사 편의를 위해 구속영장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1차 기각’ 결정이 있은 지 1주일 만에 검찰이 박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을 때부터 ‘무리수’라는 비판이 많았다. 당시 검찰은 새로운 혐의가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추가된 혐의인 ‘세금계산서 허위 작성’ 등은 구속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사안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여론을 의식한 검찰의 ‘보여주기식’ 청구가 도를 넘고 있다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앞서 검찰은 삼성전자서비스 윤모 상무에 대해서도 영장을 재청구했다가 재차 반려당하기도 했다.‘오기’로도 비쳐지는 이 같은 검찰의 영장재청구는 최근 들어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지는 모습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 등에 대한 영장이 두 번 청구됐고 두 번 모두 기각된 사례들이다.
영장 전담 판사를 거친 한 법관은 “검찰이 제대로 된 보강 수사 없이 거의 똑같은 영장 청구서를 낼 때가 꽤 있다”며 “이미 내려진 법원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떼쓰기’ 혹은 ‘압박’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피의자 구속을 수사 성과로 인식하는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장 청구 횟수와 재청구 사유 등에 대해 제한이 없는 점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한 변호사는 “영장 발부 여부를 떠나 심사 과정에서 10시간 넘게 유치장 등에서 대기하는 피의자들이 겪는 중압감은 말로 표현이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