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제중재 인프라 '탄탄'… 싱가포르가 우리 뒤에 서는 날 곧 올 것"

Cover Story - KCAB인터내셔널

인터뷰 - 신희택 KCAB인터내셔널 초대 의장

대륙법·영미법 변호사 모두 활동
중재에 유리한 법률시스템도 갖춰

외국 변호사 韓 중재시스템 높이 평가
한국기업들도 좀 더 관심 가져주길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신희택 대한상사중재원 국제중재센터(KCAB인터내셔널) 초대 의장은 “이륙을 마쳤다”고 말했다. KCAB인터내셔널이 ‘아시아 중재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싱가포르와 홍콩을 제치고 국제중재산업의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5년 뒤 KCAB인터내셔널은 해마다 1만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6000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한국 국제중재산업의 선봉에 선다. 신 의장(사법연수원 7기)은 의욕에 넘쳐 있었다. 그는 국제통상·투자거래 전문가로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10년간 교수를 지냈다.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18층 KCAB인터내셔널 중재인라운지에서 신 의장을 만났다. 국내외 중재인들이 심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국제적 명성의 중재인 마이클 모저 전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장 등도 여기서 머리를 식혔다고 한다. 적막하다 싶을 만큼 조용했고 잠실대교와 올림픽대교, 잠실운동장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국제중재산업의 발전 가능성이 큽니까.

“한국은 국제중재를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입니다. 유능한 변호사가 많고 중재에 유리한 법률 시스템도 갖췄습니다. 올 들어서는 대규모 국제중재를 위한 시설도 마련했습니다. ‘아시아의 중재 허브’로 성장할 수 있는 인적 물적 토대가 탄탄합니다. 신속한 중재도 큰 강점입니다. 한국의 국제중재산업은 이제 이륙을 끝내고 목적지를 향해 본격적인 비행(飛行)을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한국은 대륙법을 따르는 나라인데요.“국재중재가 판례 중심의 영미법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은 법조문을 중시하는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지만 미국 등 외국 변호사들이 많습니다. 10대 로펌에서 일하는 외국 변호사만도 500명에 달합니다. 게다가 대륙법을 쓰고 있는 나라들도 많습니다. 이들 나라의 기업들은 자신에게 친숙한 대륙법을 선호하겠지요. 영미법을 따르는 나라의 기업과 대륙법을 적용한 국가의 기업 사이에 분쟁이 붙었을 때 한국은 두 나라 기업 모두에 충분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중재에 유리한 법률 시스템은 어떤 의미입니까.

“중재의 구속력(승인과 집행)은 법원 판결로 생겨납니다. 법원이 중재 결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효력이 없습니다. 한국의 법원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중재에 ‘프렌들리’합니다. 기업끼리 합의한 내용의 의미를 잘 헤아려주고 신속하게 처리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중재법도 선진적입니다. 국내중재와 국제중재의 규칙이 분리돼 있고, 국제사회가 합의한 최신 ‘중재 표준’을 충실히 반영해 2016년 중재법과 관련 규칙 등도 개정됐습니다.”▶물적 기반도 크게 확충했지요.

“지난 4월 홍콩국제중재센터나 뉴욕국제중재센터(NYIAC) 같은 곳보다 넓은 심리시설을 마련했지요. 이제는 초대형 중재사건을 유치해도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중재인단의 규모도 400명이 넘습니다. 지난해 300여 명에서 더 늘렸습니다. KCAB인터내셔널의 위상이 높아지다 보니 중재인들도 중재인단에 들어오겠냐는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한류가 국제중재산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데요.“한류가 전 세계로 뻗어가면서 중재 당사자들과 중재인들도 한국을 매력적인 나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국을 중재지로 택하자는 데 반대의 목소리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 중재 결과가 좋아야 하겠지만 중재 과정이 ‘가보고 싶은 나라’에서 이뤄진다면 좋겠지요. 국가의 매력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싱가포르를 보세요. 북·미 정상회담에 160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고 합니다. 우리의 경쟁 상대인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지난 4월2일 취임한 신희택 KCAB인터내셔널 초대 의장(왼쪽 다섯 번째).
▶싱가포르는 20년 만에 홍콩의 아성을 무너뜨렸습니다.

“싱가포르는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틈을 잘 노렸다고 봅니다. 홍콩이 사회주의 국가로 넘어가면 중재자로서 지위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에 따라 치밀하게 움직였습니다. ‘맥스웰 챔버스’로 불리는 대규모 중재시설을 갖추고 해외 중재기관과 유명 중재인에게도 공간을 내줬습니다. 20년 가까이 정부 차원의 대대적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싱가포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이러한 노력들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국제중재가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을 줍니까.

“중재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큽니다. 어지간한 중재는 1건당 20~30명 정도가 참여합니다. 이들이 쓰는 비용만 25억원이 넘습니다. 한국의 로펌을 쓰게 되고 통역도 필요로 합니다. 숙식비와 항공료도 들여야 하지요. 관광이나 쇼핑 등으로 소비하는 돈은 뺀 것입니다. 인천공항의 택시운전사에게까지 혜택이 이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아쉬운 점은 없습니까.

“한국 기업들이 국제중재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합니다. 한국 건설회사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로부터 일감을 따내서 계약서를 쓸 때 중재기관을 런던중재법원(LCIA)으로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우디 정부가 ‘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청업체인 한국의 건설회사가 외국 기업과 재하청 계약을 맺을 때조차 LCIA를 선택해요. 중재사건이 발생하면 시간과 돈을 쓰면서 영국까지 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럴 때는 중재기관 또는 중재지 선택에 있어서 ‘갑질’을 좀 해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 기업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중재가 한국에서 이뤄진다는 것만으로도 ‘유리한 선택지’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기업끼리 뉴욕에 가서 중재하기도 했다고요.

“우리나라의 대형 금융회사끼리 분쟁이 붙었는데 미국 뉴욕까지 날아가서 중재한 사례가 있어요. 국제경쟁입찰로 금융회사를 매각한 사건이라 계약서에 중재지를 뉴욕으로 한 것 같아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한국 기업 간 거래가 됐어요. 이럴 때는 서로 합의해 한국에서 중재해도 좋을 텐데 수십 명씩 뉴욕에 가서 모든 문서를 영어로 번역하고 미국 로펌을 구했어요. 참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의 중재산업이 이 정도구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됐고요.”

▶앞으로 어떤 부분에 집중하실 계획입니까.

“국제적 로펌이 참여한 세미나에 가보면 외국 변호사들이 한국의 중재 시스템을 매우 높게 평가해줍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의 강점을 잘 알리지 못했어요. 다양한 홍보활동을 통해 중재사건을 유치할 생각입니다. 한국은 무역이 많은 나라이고 일본 중국과도 접해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 기업에 분쟁이 붙었을 때 멀리 갈 필요없이 같은 대륙법 국가이고 가까운 한국에서 중재하라고 적극 설득해볼 예정입니다. 중재기관은 외국기관을 이용하더라도 중재지는 한국을 선택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어요. 차근차근하다 보면 싱가포르가 우리 뒤에 서 있는 날도 머지않을 겁니다. 책임감을 무겁게 느낍니다.”

■ 신희택 KCAB인터내셔널 의장▷1952년 출생
▷1975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77년 사법연수원 7기 수료
▷1980~2007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1981년 서울대 법학대학원 졸업(법학석사)
▷1983년 미국 예일대 로스쿨 법학 석사
▷1990년 미국 예일대 로스쿨 법학 박사
▷1999~2001년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이사
▷2007~2017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2010~2012년 과기부 법학교육위원장
▷ 2012~2015년 법무부 변호사제도개선위원장
▷ 2015~2018년 서울국제중재센터 이사장
▷ 2016년~현재 무역위원회 위원장
▷ 2018년~현재 KCAB인터내셔널 의장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