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신흥국 발작' 우려… 증시 이탈자금, 단기상품으로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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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탁금 33兆…석달새 1.5兆 늘어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신흥국 시장의 불안이 커지면서 주식 등 위험자산에서 벗어나 단기 금융상품에 돈을 넣어두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의 ‘단기 부동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13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고 연내 두 차례 추가 인상을 시사해 신흥국 ‘긴축 발작’에 대한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인 만큼 자금 운용의 단기화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주식형펀드에서 빠지는 자금증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식형펀드 투자자들은 올 들어 빠르게 돈을 빼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 연속 순유입됐던 국내 주식형펀드(공·사모 합산)에서는 지난 4월에 1733억원, 5월에 1430억원이 순유출됐다. 지난해 9월부터 지난 4월까지 8개월 연속 자금이 순유입된 해외 주식형펀드에서도 지난달 2345억원이 순유출됐다.
주식형 펀드 5개월 만에 순유출
만기 1년 이하 ELS엔 자금 몰려
"헤지펀드·공모주펀드·단기채 등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대응을"
주식 투자자들도 ‘공격’에서 ‘일단 대기’로 방향을 트는 분위기다. 한국증권금융에 따르면 주식 투자를 위한 대기성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달 말 기준 33조1332억원으로, 석 달 새 1조5100억원 늘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남북경협주가 뜨면서 새로 주식계좌에 자금을 넣는 투자자도 있지만 증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존 보유 주식을 매각해 차익 실현을 한 뒤 기다려 보겠다는 투자자도 많다”고 말했다.
“여차하면 빠질 것” 단기 상품으로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은 단기 금융상품으로 몰리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4일 기준 국내 초단기채권 펀드 설정액은 7조4772억원으로 최근 3개월 새 1조2414억원 늘었다. 1년 전에 비해선 2조2400억원 증가했다. 지난 2월 초 글로벌 증시가 한 차례 폭락한 후 국내외 주가지수가 박스권에서 횡보하자 초단기채 펀드에 자금이 집중됐다.
대표적 ‘중위험 중수익’ 재테크 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 중에서도 만기가 1년 이하인 단기 상품이 인기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5월 만기 1년 이하 ELS 발행 규모는 9383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했다. 지난해(3623억원)의 2.6배이고, 최근 3년 내 최대 규모다.
안병원 삼성증권 삼성타운금융센터 PB팀장은 “최근 신흥국 증시가 불안정하고 국내 주식시장도 남북한 경제협력 테마주 중심으로 들썩였을 뿐 방향성이 없다 보니 현금성 자산으로 시장에 단기 대응하는 사람이 많다”며 “헤지펀드나 ELS 등을 활용해 변동성 확대에 대비하는 모습도 나타난다”고 말했다.서울 압구정동의 한 증권사 PB팀장은 “최근 한 고객은 연초까지 높은 수익을 낸 주식형 펀드 20억원어치를 환매해 비교적 안정성이 높은 공모주펀드, 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와 환매조건부채권(RP), 전자단기사채 쪽으로 자금을 옮겼다”고 말했다. 공모주펀드는 자산 90% 상당을 채권과 현금성 자산에 투자하고 일부를 공모주에 투자해 초과 수익을 노리는 펀드로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기가 짧고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특판 RP는 최근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KB증권이 지난달 말 1000억원 한도로 판매한 만기 3개월 이자율 3%짜리 특판 RP는 판매 시작 25분 만에 모두 팔렸다. 14일 1500억원 한도로 내놓은 2차 특판 RP도 당일에 전부 팔렸다.
“재테크 사계절 중 ‘가을’”미국의 단계적 금리인상과 신흥국 시장의 불안정성은 단기에 그칠 사안이 아닌 만큼 변동성 장세에 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글로벌 자금이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한국 경기도 하반기를 지나면서 점차 둔화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 조심스러운 투자 판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경기 사이클을 사계절에 빗대자면 지금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라며 “성장기인 봄은 주식하기 좋고, 물가가 오르고 경기도 좋아지는 여름엔 원자재에 투자하는 것이 좋지만 가을은 현금을 늘리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안 팀장은 “중위험 중수익 수준에서 변동성을 관리하는 상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헤지펀드나 공모주펀드, 단기채, 손실진입구간이 낮은 ELS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혜/강영연/나수지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