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야기] "4차 산업시대에도 정부는 혁신 조력자로서 할 일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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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4차 산업혁명과 정부의 역할1977년 설립된 애플컴퓨터는 2007년 기업명을 ‘애플’로 변경했다. 이후 출시한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는 5년간 순매출액의 폭발적 증가에 기여한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2011년 애플의 수익(764억달러)은 미국 정부의 운용 현금잔액(737억달러)을 넘어설 정도였다. 이는 주가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1990년 8달러에 불과했던 애플의 주가는 700달러로 급상승했다.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의 출시로 애플은 미국 최대 기업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혁신은 수많은 불확실성 내포한 과정
위험 감내하는 정부의 다양한 투자가
4차 산업시대 기업 혁신 토양 제공하고
사회 전반으로 혁신 확산되는 생태계 조성
애플의 생산성은 다양한 기술 통합의 결과애플의 성공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판매액 대비 연구개발(R&D) 비율은 꾸준하게 감소했다는 점이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등 13개 경쟁사와의 비교에서도 두드러진다. 5년간의 평균치 자료에서도 13개 기업 가운데 열 번째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애플이 효율적인 연구개발을 수행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적은 R&D 비용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높은 생산성은 효율성의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 석세스대학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의 마리아나 마추카토 교수는 그의 책 《기업가형 국가》에서 이는 애플이 독창성 있는 기술과 부품 개발이 아니라 획기적인 시스템 구축에만 전념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주요 기술과 부품은 정부가 이미 개발한 결과물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로 대표되는 애플의 주요 제품은 경쟁 제품과 차별화되는 열두 가지의 기술이 통합된 결과물이다. CPU, RAM, 마이크로 하드드라이브, 액정화면, 리튬이온전지, GPS, 음성인식기술 등이 그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술이 모두 국가 주도로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애플의 성공 기반이 되었던 핵심 기술은 모두 정부 지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거대자기저항을 발견한 공로로 독일의 물리학자 페터 그륀베르크가 2007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후보에 오르자,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베어지 요한슨은 그의 거대자기저항 발견이 없었다면 현재의 아이팟 산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표현으로 그의 업적을 설명한 바 있다. 그의 기초연구는 이후 미국 에너지국의 상당한 지원을 통해 IBM과 시게이트 등의 수익창출원이 될 수 있었다. 혁신의 이면에 공공부문이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 혁신에서 정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일반적으로 정부는 관료적이고 관성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 탓에 혁신활동은 민간의 몫이며, 정부는 민간의 활동이 저해되지 않도록 환경과 조건을 조성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애플의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간이 만들어 낸 혁신의 결과물은 많은 경우 정부의 노력에 기반한다. 혁신의 성공은 새로운 기술의 개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상품화돼 우리 생활에 도움을 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혁신의 과정에 정부 역할이 큰 이유는 원천 기술의 개발과 응용이 최종적인 혁신으로 확산되는 인과과정이 직선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기술과 응용, 시장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는 다양한 피드백의 고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기술이 상품화되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까닭이다. 제약산업의 경우 일부 신물질의 발견에서부터 신약 출시까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제품의 개발단계에서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마추카토 교수는 혁신에 따른 불확실성은 민간이 감내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혁신에 따르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미국 제약산업의 경우 신물질 신약의 75%가 민간 기업이 아닌 공공투자를 받은 국립보건원 연구실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민간제약사는 위험이 낮고 수익은 높은 기존 약의 변형에 집중한다.
민간과 공공부문의 공생혁신과정에서 국가에 의한 위험의 경제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범용기술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미네소타대학 경제학과의 루탄 교수는 그의 책 《Is War Necessary for Economic Growth?》에서 지난 세기의 대규모 장기 정부 투자 없이는 범용기술은 개발되고 실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장기 투자로 인한 과실은 기업을 통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 《기업가형 국가》의 저자 마추카토 교수는 과실이 특정 기업이나 산업 부문에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혁신 생태계의 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혜택이 사회 전반에 미치지 못한다면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혁신기반의 성장이 필요한 오늘날, 큰 국가 혹은 작은 국가가 아닌 스마트한 공공의 역할이 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