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자금난 겪는 데스밸리 기업 적극 지원… 유니콘 10개 육성할 것"

39년 만에 첫 기업인 출신 - 이상직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지난 12일 취임 100일
GM 군산 협력사·해외 진출 기업 등
중소기업인 3000명 만나

현장에 답이 있다
2009년 데스밸리 직접 경험
기업인 어려움 현장서 해결

자금조달 어려운 기업 위해
내년 1조 '혁신성장 유동화사업'
중진공 후순위로 신용 강화

일자리 창출 기업 발굴
핀테크·드론 등 8대 산업+한류·바이오
대창모터스·힐세리온 등 성장 가능
이상직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55)은 2007년 저비용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을 창업했다. 하지만 가시밭길이었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스타항공은 위기에 처했다. 2009년 월급을 못 준 달도 있었다. 창업 3년차부터 겪는다는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를 직접 경험했다. 그는 “직원 월급도 못 주고, 비행기 기름값도 현금결제를 강요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데스밸리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난 12일 취임 100일을 보낸 이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임명권자가 중소기업이 겪는 고통을 줄여주라고 이 자리에 보낸 것 같다”며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의 아우성을 해결해주는 기관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또 “임기 동안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자산가치 1조원의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혁신기업을 10개 이상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목동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만난 이상직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현장에서 속도감 있게 중소기업들의 불만 사항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 뛰고 있다”며 “자산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을 10개 이상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지난 12일 취임 100일을 맞았습니다.

“중소벤처기업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라고 이 자리에 보낸 것 같습니다. 내년이면 설립 40년이 되는 중진공의 첫 민간 기업인 출신 이사장으로 어깨가 무겁습니다. 중소기업을 설립해 잘 키운 경험을 살려 뛰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3000명 정도의 기업인을 만났습니다. 경남 사천시의 일자리 창출 우수 기업인 에스앤케이항공(항공부품 제조)을 시작으로 청년창업사관학교, 해외 진출 기업, GM자동차 군산 현장 등을 돌아봤습니다.”▶현장을 돌아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혁신기업은 설립 3~7년차 데스밸리 시기를 넘는 과정에서 ‘돈맥경화’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낮은 신용도와 담보 부족으로 시중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현장에서는 도움이 필요할 때 자금을 지원해달라는 아우성이 큽니다.”

▶대책이 있습니까.“해법으로 복합금융을 활용한 ‘혁신성장 유동화사업’을 신설할 계획입니다. 중소벤처기업이 발행하는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기초자산으로 해서 유동화 증권을 발행하고 중진공이 후순위로 인수하는 형태로 신용을 강화하면 기업들에 큰 힘이 될 겁니다. 내년에 시범사업으로 5000억~1조원 정도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펀드 방식에 비해 신속하게 집행되는 데다 부동산이나 가상화폐 투자 등에 몰리는 시중 유동자금을 꼭 필요한 산업 분야로 돌리는 효과도 기대됩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요.

“전기·자율주행차 선도기업인 충북 진천군 대창모터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가 급한 정책자금을 받는 데 25일이 걸린다고 하소연했습니다. 3년간 소형 전기차 1만 대 주문을 받았는데 조립 등 생산 기반이 부족해 연간 1000대밖에 못 만드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가진단·상담·신청·현장평가 등 4단계 과정을 한 단계로 줄여 자금 신청부터 승인까지 7일로 단축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현장의 목소리를 공유하고 지원 속도를 높이기 위해 부서·지역별 칸막이를 없애고 수도권·동부권·서부권 등 3개 권역으로 나눠 격의 없이 소통하는 ‘열린 업무보고’도 받고 있습니다.”▶올해 공단 예산이 9조원에 달합니다.

“중진공은 자산 17조원, 임직원 1000여 명의 대표적인 중기정책 집행기관입니다. 올해 예산 8조7475억원 중 절반에 가까운 4조2150억원이 중소기업 융자 자금입니다. 일자리 창출 기업에 정책자금이 우선 지원될 수 있도록 업체 선정 때 일자리 창출 비중을 당초 8.3%에서 15.3%로 높이고 일자리사업 참여 기업을 우대하는 전용자금(청년고용기업 지원자금) 3000억원을 새로 조성했습니다. 청년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청년창업사관학교 운영(1022억원), 중소벤처기업 대표 및 재직자 연수(186억원),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수출인큐베이터 운영(108억원)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니콘 기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요.“핀테크(금융기술), 자율주행차, 드론, 스마트팜 등 정부 8대 혁신성장 산업과 한류, 바이오 등 10개 분야에서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도록 씨를 뿌리고자 합니다. 첨단 미래산업 분야에서 혁신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겁니다. 청년창업사관학교, 글로벌 CEO클럽, 혁신성장 유동화사업 참가 기업, 중소기업융합연합회 등 중진공과 유관 기관이 보유한 혁신기업 풀을 적극 활용할 계획입니다. 자율주행차 분야의 대창모터스와 휴대용 무선 초음파 진단기를 만드는 힐세리온 등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기업입니다.”

▶공정경제 생태계도 강조하고 있는데요.

“저비용항공사를 설립할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독점을 깨고, 실용적이고 저렴한 가격대의 서비스를 제공해보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지금은 저비용항공사가 일반화되고, 항공 이용료도 낮아졌습니다. 이런 경험을 살려 국민에게 연간 50조원을 돌려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인터넷은행 인가에 따른 온라인 거래 활성화로 2500조원에 달하는 총부채(가계 및 기업)의 이자 1%만 줄여도 25조원이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핀테크가 활발해져 연간 카드결제액(760조원)에 대한 수수료(2%)의 절반만 줄여도 8조원가량이 절감됩니다. 연간 지출액이 24조원인 통신비도 공용주파수 무상 제공, 와이파이를 이용한 차세대 통신 활성화 등으로 절반만 줄이면 12조원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국민에게 돌아간 돈은 내수 경기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남북한 경협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진공에 남북경협 전담반을 두고 있습니다. 중진공은 2000년부터 개성공단 등 남북한 경협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게다가 평화자동차 안동대마방직 등 북한에 진출한 기업도 지원했습니다. 앞으로 농업·생명 정보기술(IT) 애니메이션 등의 분야에서 우수한 북한의 기술인력을 활용한 평양혁신센터를 설립한다는 청사진도 갖고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이 북한 내륙에 진출할 전진기지로 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초기에 15개사가 입주할 사무공간을 마련하고 공용시설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국내 기업은 설비제공형 위탁가공 형태나 남북한 조인트벤처 방식으로 진출할 수 있을 겁니다.”

이상직 이사장은…

어릴 적 꿈 찾아 이스타항공 창업…국회의원 지낸 중소벤처 전문가

‘중소기업에 희망을, 벤처기업에 날개를, 청년들에게 일자리와 꿈을.’ 이상직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직접 이 문구를 작성했다.

이 이사장은 취업 때문에 고전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릴 때 꾼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전북 김제의 모악산(795m) 자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45세 때 얻은 늦둥이였다. 그는 어릴 때 모악산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고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조종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전주고를 졸업하고 동국대에 들어간 이 이사장은 레스토랑 서빙 등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군대를 다녀온 뒤 현대그룹에 공채로 입사해 증권회사(현대증권)에서 펀드매니저 등으로 일했다. 하지만 비행기에 대한 꿈은 잊지 않았다. 당시 프리코스닥 기업에 투자해 창업 자금을 마련했다.

이 이사장은 2007년 서울 방화동에서 작은 사무실을 얻어 비행기 한 대 없이 저비용항공사인 이스타항공을 출범시켰다. 어릴 때 꿈을 40대 중반에 이룬 것이다. 창립 1년 뒤 보잉737NG 한 대를 들여왔다. 저비용항공사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최신형 제트기를 도입했다. 또 국내 항공사 중 처음으로 ‘얼리버드’ 요금제를 내놨다. 일찍 항공권을 구매하는 탑승객에게 1만9900원이라는 초저가로 김포~제주 항공권을 판매했다. 이 이사장은 항공업계 후발주자인데도 저가 전략을 펼쳐 ‘항공여행 대중화’를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내가 잘할 수 있고 꼭 하고 싶은 일을 열정을 지니고 매진하면 길이 열리게 돼 있다”며 청년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도전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1963년 전북 김제 출생
△1981년 전주고 졸업
△1989년 동국대 경영학과 졸업
△1989~2001년 현대증권 근무
△2005년 고려대 경영학 석사
△2007년 이스타항공 설립
△2009~2012년 전북대 초빙교수
△2010~2012년 삼양감속기 회장
△2012~2016년 제19대 국회의원
△2017년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
△ 2018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김진수/이우상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