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工大에서 '핵심 소수' 인재를 육성하려면

20% 혁신기술이 산업의 80%를 바꾸듯
공대 교과·정원 20%는 신기술에 할애
학과 칸막이 걷고 유연하게 교육해야

박수용 < 서강대 교수·컴퓨터공학 >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는 상위 20%의 사람이 전체 부(富)의 80%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핵심 소수’와 ‘사소한 다수’ 이론은 사회학과 경제학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파레토의 법칙’ 또는 ‘80:20 법칙’이라고 불린다. 이 법칙은 이후 여러 분야에 적용돼 회사가 내놓은 20%의 제품이 80%의 이윤을 가져오며, 상위 20%의 고객이 매출의 80%를 창출하고, 기업 직원 중에서도 20%의 우수 판매사원이 80%의 매출을 올린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 법칙은 산업 변화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들어 20%의 소수 혁신적인 기술들이 산업의 80%를 변화시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의 인터넷’이라고 불리는 블록체인 기술,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AI) 기술, 세상의 모든 기기를 연결하고 데이터를 소통시키는 사물인터넷(IoT) 기술, 드론(무인항공기), 빅데이터, 가상현실, 무인자동차 및 로봇 기술 등 소위 정보기술(IT)에 기반을 둔 소수의 혁신적인 기술이 우리의 전통적인 제조업 지형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오고 있으며 유통, 금융, 의료, 미디어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런 소수의 혁신적 기술을 기반으로 아마존, 구글, 우버, 테슬라 같은 기업이 나왔으며 이런 기업이 세계의 산업 지도를 바꿔가고 있는 중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그러나 산업 지도를 바꾸고 있는 이런 기술을 우리 대학에서는 얼마나 잘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보면 교육 현장에 있는 필자로서는 매우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우리의 대학 교육은 학과, 즉 컴퓨터공학 전자공학 기계공학 항공공학 같은 칸막이식 전공을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해당 전공은 입학 정원이란 울타리에 둘러쳐진 채 외부와의 경쟁 없이 공급자 중심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 생태계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대학은 기초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지 변화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기술 학원이 아니다”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도 일견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대학에는 산업 생태계의 빠른 변화 흐름에 맞춰 인력을 공급해야 하는 책임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한 번 교과목이 만들어지면 10년, 20년 동안 지속돼 새롭게 부상하는 기술을 반영한 신규 과목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기존의 학과식 교육체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교육 방식인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모든 학과가 변화하는 산업과 기술에 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의 핵심 인력을 양성하는 공과대학은 좀 더 유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롭게 부상하는 산업들은 기존의 학과식 교육을 두루 연계하는 지식을 필요로 한다.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계공학이 필요하지만 제어회로의 전자공학, 인공지능의 컴퓨터 교육이 모두 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고 앞서 나가려면 학과라는 울타리를 과감하게 걷어내고 새로운 전공이나 분야를 학생들이 섭렵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체계가 필요하다. 드론을 공부하고 싶은 학생, 무인자동차를 만들어 보려는 학생이 4년 내내 관련 과목을 학과를 초월해 자유롭게 수강하고 실질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졸업할 때쯤이면 졸업 작품을 기업의 채용 담당자에게 당당하게 내보일 수 있는 학생을 우리나라의 어느 대학에선가는 길러내야 하지 않을까.

공과대학이라면 적어도 20%의 과목은 새롭게 부상하는 신규 기술을 위한 교육에 할당하고, 각 학과 입학 정원의 20%는 학과를 넘나드는 창의적 융합 전공에 배정하며, 또 우리나라 대학의 20%가 이런 새로운 공학 교육에 참여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그렇게 배출된 인재가 우리나라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 갈 핵심 소수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