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경기 비관론… 연내 금리 못 올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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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리 인상에도 한국 국고채 금리는 되레 하락미국 중앙은행(Fed)이 ‘연내 네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는 등 통화 긴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한국 국채 금리는 오히려 하락(국채 가격 상승)하고 있다. 강한 경기 회복세를 근거로 시중 돈줄 죄기에 나선 미국과 달리 한국은 고용, 물가, 수출 등 전반적인 경제지표가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시장 일각에선 당초 예상했던 ‘한국은행의 연내 한 차례 기준금리 인상’이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국채 금리, 왜 안 오르나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채권시장 지표 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Fed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연내 4회 금리 인상’을 시사한 다음날인 지난 14일 이후 0.045%포인트 하락했다. 이날 종가는 연 2.178%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국내 경기가 좋아 한은이 이른 시일 내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면 상승하고, 그 반대 경우엔 하락하거나 하향 안정세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 年 2.178%
14일 이후 0.045%P 떨어져
수출 꺾이고 고용지표 악화
"국내 경기 감안땐 인상 어려워
韓·美 금리격차 1%P 벌어질수도"
서재춘 미래에셋자산운용 부사장은 “Fed가 3월에 이어 이달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한국(연 1.50%)과 미국(연 1.75~2.00%) 간 기준금리 격차가 0.50%포인트까지 벌어졌다”며 “하지만 채권시장에서 한은이 금리를 따라 올리기엔 국내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채 금리 상승 압력이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지면 한은이 외국인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유인이 커진다.
증권업계에선 통상 3년 만기 국고채 금리와 기준금리 간 격차가 0.70~0.75%포인트 이상 벌어졌을 때 국채 금리가 ‘한은의 한 차례 금리 인상’을 선반영한 것으로 본다. 이 수치(8일 0.678%포인트)가 0.70%포인트 밑으로 내려왔다는 것은 한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낮게 보는 투자자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한국 경제성장의 버팀목인 수출 경기가 꺾인 데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경제 현안인 고용지표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국내 경기 전반에 대한 비관론이 퍼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펼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은 지난달 취업자 수가 작년 동기 대비 7만2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지난 15일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이 이어지던 2010년 1월(1만 명 감소) 이후 8년4개월 만의 최저치다.
“8월 인상도 장담 못해”
채권시장에선 지난달까지만 해도 한은이 오는 8월 한 차례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다음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소수 의견이 나온 뒤 8월에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는 게 채권시장 참가자 다수의 예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계청이 15일 ‘5월 고용 동향’을 발표한 뒤론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8월에서 10월로 늦춰지거나 연내 금리 인상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7일 낸 ‘6월 미국 금리 인상과 시사점’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국내 경기를 감안하면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런 추세라면 한국과 미국 간 기준금리 격차가 연내 1.00%포인트까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 연구위원은 “한은은 앞으로 한·미 금리 격차 확대에 따른 외국인 자금 유출을 막는 것보다 경기 부진에 대응하는 데 통화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도 했다.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노력도 해야겠지만,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5월 1.5%)이 8개월 연속 한은 목표치(2.0%)를 밑돌 정도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경기를 부양할 필요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채권시장 참가자들의 미래 경기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국채 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주식시장에도 부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 경기가 위축되면 위험 자산인 주식에 투자하려는 투자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