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한국당 중진들, 심청이처럼 깨끗이 몸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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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서 열린 '보수혁신 세미나'서 쓴소리 쏟아내“성장과 분배의 양립을 위한 해법을 제시해본 적이 있나요? 주택이 전체가구수보다 많은데 집 없는 사람은 왜이리 많습니까? 안보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보수정권 고관대작·정치인들은 왜 이리 많나요?”
"중산층 기반 무너지는데 한국당은 뭐하고 있었나
새롭게 태어나려면 국고보조금 받지않겠다 선언하라" 주문
민주당엔 "가장 못난 야당에 이긴 것…미래비전 제시해야"
송복 교수 "보수진영, 민간주도 시장경제 원칙 되새겨보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9일 “이래놓고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이 표를 달라고 할 자격이 있느냐”며 속사포 같은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이날 서울 서강대에서 남덕우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의 보수,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살릴 것인가’ 세미나에서 강연자로 나섰다. 다른 원로 정치인과 경제학자들도 한국당에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했다.◆몸으로 실천하지 않는 보수
김 전 의장은 “그동안 보수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안보환경 덕분에 유리한 정치적 토양에서 정치를 해왔다”며 “안보장사꾼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보수에 북풍이 역풍으로 작용하면서 이번 6·13 지방선거의 패배 원인이 됐다”고 진단했다.
김 전 의장은 14대 총선(1992년)에서 민주자유당(한국당 전신) 공천을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18대 국회까지 5선을 지내고 국회의장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뒤 저술과 강연에 몰두하고 있다. 부산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김 전 의장은 한국당과 당 소속 정치인들의 적극적인 실천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과격 시위로 몸살을 앓고 경찰관이 얻어맞고 주민들이 불안에 떠는데 보수정당·정치인들이 발벗고 맨몸으로 막아냈다는 그런 소리·소문을 제발 들어보고 싶다”며 “민주주의 체제의 기반인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을 때 진보진영은 재빨리 교육 평준화와 무상급식으로 환호를 받았지만 보수진영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덤벼들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野 개헌만이 살 길
김 전 의장은 ‘개헌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정치권은 물고기만 갈고, 물을 갈지 않은 어항과 같다”며 “썩은 물을 그대로 놔두고 새 물고기가 온전히 살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헌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행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야당의 몫이어야 하는데 선거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개헌문제에 소극적이었다”며 “사람만 바꾸는 식의 임기응변 방식은 이미 끝났다. 정치판 자체를 새로 깔아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는 지방선거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는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못난 야당을 상대로 한 승리인 만큼 (민주당의 능력이라고) 즐거워할 일이 아니다”며 “정부 여당이 역대 유례없는 지지율 고공행진 중일 때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의장은 “국민들이 보수 정치인의 진정성을 계속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며 진심 어린 개혁을 주문했다. 그는 “국민으로부터 참담한 심판을 받은 야당이 새롭게 태어나려면 국민 혈세로 정당에 지원되는 국고보조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라. 국고 지원의 마약을 끊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당 중진 국회의원들을 겨냥해서는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심정으로 깨끗이 던져라”고 했고, 초·재선 의원들에게는 “이분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더 이상 눈치 보지 말고 당 개혁을 위해 어떻게 몸을 던질지 고민하고 실천해달라”고 주문했다.
◆“포퓰리즘에 진 보수”다른 원로 인사들도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보수’ 이념에 충실할 것을 당부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번 지방선거 공약을 보면 야당의 전패가 아니라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의 승리”라며 “보수진영은 민간주도 시장경제를 처음으로 주장한 경제학자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이념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그동안 보수는 다른 진영을 깔보는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여기서 보수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을 대표해 토론자로 나온 김용태 의원은 “한국당조차 시장경제의 수호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보수 가치를 제대로 대표하는 정당이 아니었다. 안보관 역시 반북(反北) 정서에 기댄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선거 과정에서 여론조사기관도 믿지 못하고 육감과 짐작·바람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당 구성원들의 한심한 생각을 반성한다”고 고백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