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노동계에 건네진 '6·13 메시지'

박기호 선임기자 겸 좋은일터연구소장
6·13 지방선거의 특징은 쏠림이다. 결과를 둘러싸고 다양한 평가가 나왔다. ‘보수가 보수를 심판했다’ ‘보수의 궤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사망선고’ 등. 서울 97 대 3, 경기 128 대 1, 인천 32 대 1. 정치적 스펙트럼이 비교적 넓었던 수도권 지역의 광역의회 의원 당선 결과라고는 짐작조차 힘든 숫자들이다.

표심으로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이 투표라면 실패한 세력이 하나 더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다. 민주노총은 유세 기간 전국 곳곳의 민주당 유세장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힘으로써 법을 개악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촛불 정부’ 탄생에 기여했다고 생각해온 터라 ‘믿던 도끼에 찍힌 발등’의 신세였을 법하다.민주노총에 등돌린 표심

민주노총이 주로 시위한 곳은 부산 울산 경남 등지였다. 선거 험지에 힘을 모아야 민주당 낙선이라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민주노총은 세 확장은 물론 세 확보에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문팬의 한 회원은 ‘민주당 유세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민폐노총 민노총 선거방해 일지’라는 그래픽까지 올렸다.

민주노총은 개정 최저임금법이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테이크 100g 주던 것을 200g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이제 와서 200g에는 접시 무게 100g도 포함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이 한국당과 손잡고 법을 개정한 것은 산업 현장의 어려움 때문이다. 복잡한 수당체계 속에서 산입범위가 좁아 연봉 4000만원 초과 대기업 근로자도 최저임금 위반이 된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중견·중소기업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더 많은 황금을 취한다는 명분에 밀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결국 거위를 죽이는 오류를 범하지 않겠다는 것이 법 개정 취지다.민주노총의 ‘민주당 때리기’가 선거에서 먹히지 않은 것은 유권자들이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은 홍영표 원내대표 주도의 법 개정으로 중도노선의 표심을 얻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유권자 외면하자 헌재로

최저임금위원회 참여 자체를 거부하며 개정 법에 반대해온 노동계는 지방선거 이후에도 민주당과 선 긋기 중이다. 선거 다음날 민주노총은 ‘민주당의 압도적 지지라는 외형을 띠지만 본질은 한국당을 명확히 심판한 선거’라고 했다. 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오만과 폭주를 미리 경계한다’고도 경고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민심’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노동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최근 최저임금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유권자들이 외면하자 헌법재판소로 달려간 꼴이다.6·13 지방선거가 노동계에 건넨 메시지는 확실해 보인다. ‘광화문 촛불 광장에 나부끼던 노동단체 깃발은 더 이상 채무 독촉장으로 날아다닐 수 없다’는 경고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노동계에 발목 잡히지 말고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메시지를 무시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노무현 정부 초기 물류대란을 가져온 화물연대 파업 같은 사태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라는 것이다.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