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욱의 전자수첩] "5G 시장 운명 걸렸는데 삼성은 기다리라고만…"

최초 5G 상용화, 우리 기술 아니면 무의미
화웨이 5G 장비 도입 반대 목소리 커
삼성, 9월엔 3.5GHz 상용장비 내놔야
정부 국산화 기조에도 반전 가능성 있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삼성전자는 납기일정에 맞춰 공급한다지만, 우리로선 시장 선점이 걸린 문제인데..."

국내 한 이동통신사 고위관계자는 중국 화웨이와 삼성전자의 5G 장비 선정을 두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국내 이통사들의 난처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최근 이통3사는 5G 장비 도입을 두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가격도 저렴하고 성능도 우수한 화웨이 장비가 매력적인 건 사실이지만, 미국과 호주가 우려하는 보안 문제가 걸린다. 그렇다고 더 비싼데다 개발이 완료되지도 않은 삼성전자 장비를 마냥 기다리는 것도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 청와대 게시판에는 화웨이 장비 도입을 반대하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글로벌 최초 5G 상용화를 우리 기술로 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의견이 골자다. 이통사 입장에서 이를 지나칠 수도 없다. 국민 모두가 잠재적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시기다. 국내 이통사들은 7∼8월에 장비업체를 선정하고, 9∼10월부터 상용망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9월 전 해당 장비를 개발 완료하겠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초조하다. 이통사들이 시장 선점을 위해 5G 서비스 조기 상용화에 매진하는 가운데 화웨이는 이미 100MHz폭 이상을 지원하는 상용장비 개발을 완료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국내 이통사가 내년 3월 글로벌 최초 5G 상용화에 나선만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사들은 저렴하고 성능이 우수한 화웨이의 5G 장비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에게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사들은 저렴하고 성능이 우수한 화웨이의 5G 장비로 눈을 돌리고 있다. 보편요금제 이후 수익이 급격히 줄어들 것을 우려하면서부터다. 5G 전국망 구축에 향후 5년간 최소 20조원 정도가 지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최대한 돈을 아껴야 하는 상황도 이와 맞물린다.

LG유플러스는 이미 LTE 기지국에 화웨이 장비를 적용하고 있다. 그만큼 화웨이의 5G 장비를 도입할 가능성도 높다. SK텔레콤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계열사 SK하이닉스의 주요 고객이 화웨이인 점을 고려하면 화웨이의 장비 도입 요구를 뿌리치기도 쉽지 않다. KT는 정부의 장비 국산화 기조에 동참하는 입장으로 화웨이 장비 도입 가능성이 이통3사 중 가장 낮다. 하지만 설비 투자비 문제 로 화웨이 장비를 일부 도입할 가능성도 있다. 황창규 회장이 27일 열리는 '상하이 MWC'를 참관해 화웨이의 5G 기술력을 직접 확인한 후, 도입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정부 기조 대로 국산화에 중점을 두고 5G 장비업체를 선정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화웨이의 5G 장비가 기술력·안정성에서 적절한 평가를 받는다면 상황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만약 이통사들이 화웨이 5G 장비를 도입한다면 국내 통신 장비 시장은 물론 단말기 생태계도 급격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화웨이는 그간 LG유플러스의 LTE 기간망과 단말기 일부를 공급하는데 그쳤지만, 5G 장비를 팔 때는 5G 단말기도 함께 끼워파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문제는 다른 이통사들에게도 확대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화웨이는 국내 시장을 교두보로 삼아 전 세계시장 공략에 나설 수 있다.

삼성전자가 국내 기업이란 이유로 이통사들에게 장비 사용을 요구하진 않겠지만, 이통사들이 느끼는 감정은 좀 다르다. 이들은 정부와 여론 눈치보느라 5G 상용화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 결국 우리 기술로 5G 상용화를 이루기 위해선 삼성전자가 화웨이를 선택하지 않아도 될만한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 장비 개발 시기를 앞당기든, 이통사들이 수긍할 만한 가격을 제시하든.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