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캔에 1만원' 수입맥주 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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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세서 종량세로…酒稅체계 개편 검토‘수입맥주 4캔에 1만원.’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문구가 이르면 내년부터 사라질지도 모른다. 수입맥주는 국산맥주보다 상대적으로 세금을 덜 내 할인행사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4캔에 5000원 짜리 수입맥주도 편의점에 등장했다.
국산맥주 "조세 불평등"
국산 '원가+유통비' 가격에 세금
수입제품, 수입 신고가에만 세금
현행 酒稅로만 따져보면
국산 417원·외국산 365원
종량세땐 국산·수입 동일 세금
수입맥주, 지금처럼 과도한 할인 불가
하지만 국산맥주 업체들로부터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자 조세당국은 맥주 과세체계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종가세(가격에 비례해 과세)인 맥주 주세를 종량세(양에 비례해 과세)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이럴 경우 수입맥주에 붙는 세금이 늘어 지금처럼 파격적인 할인행사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미국·유럽산 주세 30% 더 싸
국세청은 최근 소주 등 다른 주종은 제외하고 맥주의 주세 체계만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꾸자고 기획재정부에 건의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산맥주 업체들이 제기한 불평등 과세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국세청이 건의한 주세법 개정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맥주 주세는 72%로 국산과 외국산이 똑같다. 별도의 부가가치세와 교육세 30%가 붙는다는 것도 같다. 하지만 과세표준(세금부과의 기준이 되는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국산맥주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국산맥주의 과세표준은 ‘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이다. 수입맥주의 과세표준은 ‘수입신고가(관세 포함)’로 돼 있어 수입업자들은 판매관리비와 이윤은 세금을 내고 난 뒤 가격에 포함한다. 국산맥주는 판매관리비, 이윤에 대해서까지 세금이 부과되고 수입맥주는 여기에 대한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구조다.
국산맥주의 평균 과세표준은 580원이다. 반면 수입맥주는 관세까지 합해 507원이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에서 수입되는 맥주는 관세도 없어 과세표준이 390원에 불과하다. 미국산 맥주는 올해 1월부터 관세가 철폐됐고 유럽연합(EU)에서 들여오는 맥주는 다음달부터 관세가 0원이다.
과세표준 차이에 따라 국산맥주에 붙는 주세는 417.6원인 데 반해 미국·유럽산은 280.8원, 그 외 수입맥주는 365원이다. 교육세와 부가세까지 합한 총세금은 국산이 655.2원, 미국·유럽산은 440.5원, 나머지 수입맥주는 572.7원이다.
국내 업체들 “세금서 역차별”2013년 8966만달러였던 맥주 수입액은 4년 뒤인 지난해 2억6309만달러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입맥주의 국내 시장 점유율도 3.6%에서 10.6%로 세 배로 늘었다.
수입맥주가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자 수제맥주를 만드는 국내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외국산에 유리한 주세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소기업 육성을 중요시하는 현 정부 들어 이 같은 목소리는 더 커졌다.
조세당국은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꿀 경우 세금을 얼마나 매길지는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5일 한국세무학회 등이 공동 주최한 ‘열린 기업납세환경개선 세제개편 토론회’에선 국산·수입맥주 모두에 L당 728.3원의 주세를 매기자는 안(정철 서울벤처대학원대 융합산업학과 교수)이 제시됐다.
이 안을 적용하면 미국·유럽산 맥주의 주세는 지금보다 2.6배, 나머지 수입맥주는 2배 늘어난다. 맥주 수입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세금 덕분에 정상가보다 최대 40% 할인한 가격에 수입맥주를 팔 수 있었다. 세금이 오르면 지금처럼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기 힘들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기재부가 국세청 안을 받아들이면 올해 9월 정기국회에서 법을 개정해 이르면 내년부터 세금을 올릴 수 있다.
소비자들 반발 우려
‘혼술(혼자 술을 마시는 것)’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등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편의점에서 1만원에 수입맥주 4캔을 구입하는 것은 보편적인 소비문화가 됐다. 맥주 주세를 올리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큰 반발이 있을 수 있다.국세청이 소주 등 다른 술은 놔두고 맥주 세금만 올리는 것도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조세당국 관계자는 “소주는 ‘서민술’이라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를 내세울 경우 “맥주는 서민술이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이태훈/임도원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