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깊은 뜻이…" 러시아 월드컵 주요 출전국 엠블럼 대해부

엠블럼 하나에 국가의 과거와 미래 담아
엠블럼에 새겨진 별개수=우승횟수 의미
사진=KBS 축구중계 방송 캡처
그야말로 각본없는 드라마였다.

대한민국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후보로 꼽히던 피파세계 랭킹 1위 독일에게 승리를 거두자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축구팬들은 물론 국내외 언론들은 앞다퉈 관련 보도를 내보내면서 독일의 몰락과 대한민국의 투혼을 비교했다.대한민국 에이스 손흥민은 경기 종료 직전 주세종이 독일 골문으로 힘껏 찬 공을 끝까지 따라가 골을 성공시켰다. 손흥민은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날려버린 듯 감동적인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유니폼 왼쪽에 붙어있는 축구 대표팀 엠블럼에 키스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자국 국기 대신 유니폼에 새겨지는 각국 대표팀 엠블럼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개최국인 러시아부터 우승후보로 꼽히는 축구강국들, 그리고 대한민국과 일본까지 축구국가대표팀 엠블럼에 담긴 뜻을 피파랭킹 순으로 정리해봤다.

▲반짝이는 별 4개와 검은 독수리의 위엄-피파랭킹 1위 독일
독일축구협회 엠블럼에는 별 4개가 반짝인다. 월드컵에서 총 4차례 우승을 차지했다는 의미다. 독일의 엠블럼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변화가 많았지만 거의 비슷한 모양이다. 3개의 동심원이 있고, 가장 바깥쪽 원의 아래쪽에는 독일 국기를 상징하는 색깔이 채워져 있다. 가장 안쪽 원에 있는 그림은 독수리다.

독수리는 독일 국장에도 들어가는 독일의 상징이다. 독수리는 용맹과 위엄, 자유를 상징한다. 신성로마제국뿐 아니라 많은 유럽 제국들은 독수리를 국장에 썼다. 962년 프랑크 왕국의 오토 대제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독수리를 공식적으로 국장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독일축구협회의 독수리는 검은 깃털을 가졌으며 이름은 파울러라고 불린다.

▲별 다섯개의 위용과 하얀 십자가-피파랭킹 2위 브라질
브라질 대표팀의 엠블럼을 보다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엠블럼 위에 있는 다섯 개의 별이다. 이는 월드컵 5회 우승을 상징해 그 자체로 상대팀을 압도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브라질의 엠블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브라질 국기와 포르투갈, 그리고 기독교를 종합적으로 알아야 한다. 색상 배열은 브라질 국기와 같다. 초록색은 농업과 산림, 노란색은 광업과 지하자원, 파란색은 하늘을 상징한다.

방패 안에는 2개의 십자가가 있다. 초록색 십자가와 흰색 십자가는 형태가 조금 다르다. 브라질은 가톨릭 신자가 인구의 70%에 달한다. 십자가는 이런 기독교의 영향을 나타낸다. 특히 하얀 십자가는 포르투갈 대표팀 엠블럼에 들어간 십자가와 같은 모양이다. 과거 브라질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가 있다.

하얀 십자가는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그리스도 기사단의 상징이다. 십자군 전쟁 때 탄생한 성전 기사단이 쓰던 십자가를 그리스도 기사단이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이 끝나자 성전 기사단이 골칫거리가 됐고 교황은 각국 국왕에게 성전 기사단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포르투갈 국왕은 이 명령에 응하지 않았고 성전 기사단은 포르투갈에서 그리스도 기사단이 됐다. 결국 이 하얀 십자가는 자주성과 용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알수 있듯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을 정도다.

▲아직 별이 없는 최강자-피파랭킹 3위 벨기에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을 노리고 있는 피파랭킹 3위의 벨기에는 1981년까지 빨간색 혀와 발톱을 지닌 황금색 사자가 검은색 방패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의 엠블럼을 사용했다. 이런 모습은 벨기에 국장에서 나왔다. 벨기에 국장 가운데에 있는 브라반트의 사자(Lion of Brabant)를 차용한 것이다.

벨기에는 1981년 이후 국기 위에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로 축구협회 이니셜을 새긴 엠블럼을 사용해왔다. 벨기에는 하나의 국가에서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그리고 독일어까지 3개국어를 혼용해서 사용한다. 이때문에 한 국가라는 인식이 약하지만 축구경기가 펼쳐질 때만큼은 하나가 된다. 벨기에 엠블럼에 각기 다른 언어로 이니셜을 새긴 것은 이러한 벨기에의 상황을 대변한다.

▲삼색기와 월계수의 조화-피파랭킹 5위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엠블럼에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의 약자인 AFA가 금색 방패 중앙에 크게 놓여 있다. 엠블럼 상단에는 아르헨티나 국기를 연상케 삼색기가 위치하고 있으며 이 삼색기는 아르헨티나의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운동을 전개하던 1812년 2월 27일에 처음 만들어졌다.

하늘색은 말 그대로 하늘, 흰색은 땅을 의미한다. 월계수 잎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데 승리의 영광을 의미한다. 엠블럼 상단에 있는 2개의 별은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두 차례 월드컵 우승을 이룬 것을 기념해 새겼다.

▲힘·풍요·시민 상징하는 수닭 '골루아'-피파랭킹 7위 프랑스
프랑스는 1919년 첫 엠블럼을 제작했다. 프랑스의 엠블럼에는 수탉이 상징처럼 쓰이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로마제국 시절, 프랑스 지역은 골루아(혹은 갈리아)로 불렸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수탉이 힘과 용맹, 그리고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러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 수탉이 프랑스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부상했다. 국가 권력의 주체로 나선 시민들이 부르봉 왕가의 상징이었던 '플뢰르 드 리스'(백합, Fleur de lys) 대신 수탉을 새로운 국가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현재 엠블럼의 모습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완성됐다. 골루아 수탉이 프랑스축구협회 약자인 F.F.F를 밟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닭을 형상화한 모습 속에 알파벳 F 두 개가 교차돼 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에는 엠블럼에 별이 추가됐다.

▲엠블럼 하나에 국가의 모든 것을 담았다-피파랭킹 10위 스페인
스페인의 현재 엠블럼은 1981년부터 사용됐다. 엠블럼 상단의 왕관은 스페인 왕실을 상징한다. 방패 문양 안 좌측 위쪽 칸의 성채는 카스티야 왕국, 우측 위의 사자는 레온 왕국, 좌측 아래 4개의 붉은 세로줄은 아라곤 왕국, 우측 아래 황금색 쇠줄 문양은 나바라 왕국을 의미한다. 중앙에 있는 나리꽃은 부르봉 왕가를 상징하며 아래 쪽의 석류꽃은 그라나다를 의미한다.

좌우에 있는 기둥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으로 각각 지브롤터 해협과 세우타(스페인의 자치 도시)를 의미한다. 기둥에 감겨 있는 두루마리에는 'PLUS ULTRA'(보다 더 멀리 나아가다)라고 적혀 있는데 원래 'NON PLUS ULTRA'(이곳을 넘어 아무것도 없다)였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에 문구가 바꼈다. 큰 왕관 좌우에는 1909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고 이는 스페인축구협회가 창설된 1909년을 상징하다. 엠블럼 위의 별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우승을 기념해 새겼다.

▲왕실 허락을 받아 만든 삼사자 군단의 엠블럼-피파랭킹 12위 잉글랜드
잉글랜드축구협회의 엠블럼에는 하얀 방패 안에 남색 사자 세 마리와 튜더 장미 열 송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잉글랜드가 삼사자 군단이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잉글랜드축구협회의 이 엠블럼은 영국 왕실의 허락을 받은 것이어서 더 의미가 깊다.

그렇다면 튜더 장미가 의미하는 건 뭘까? 튜더 장미는 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상징으로 바깥 부분은 붉지만 안쪽은 흰색으로 돼 있다. 튜더 왕조는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이 잉글랜드 왕권을 두고 벌인 장미전쟁 이후에 성립된 왕조로써 전쟁에서 승리한 랭커스터 가문의 헨리 7세가 요크 가문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면서 시작됐다. 장미전쟁이란 명칭은 두 가문이 각각 빨간 장미와 흰 장미를 가문의 상징으로 쓴 것에서 유래했다.

▲축구공 밟고 있는 호랑이-피파랭킹 57위 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엠블럼은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둔 2001년 5월에 발표됐다.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엠블럼 중앙에는 강렬한 눈빛의 호랑이가 축구공을 밟고 있다. 이는 축구 경기를 장악하고 한국 축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써 파란색은 희망과 젊음을 상징한다. 방패 모양의 테두리는 흰색으로 돼 있는데 자세히 보면 금색줄도 겹쳐져 있다. 흰색은 백의민족과 경기에 임하는 스포츠 정신을 상징하며 금색 테두리는 깨지지 않는 한국 축구의 강인함과 견고함을 의미한다.

▲시선강탈 검은 삼족오-피파랭킹 61위 일본
일본 대표팀의 엠블럼 배경은 조금씩 변했지만 주인공은 변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발이 3개 달린 새, 삼족오다. 일본에서는 이 삼족오를 야타가라스(八咫烏)라고 부른다. 일본 대표팀의 삼족오는 두 발을 땅에 딛고 한 발로는 축구공을 들고 있다. 일본 신화에 따르면 관서 지방으로 출정한 일본 왕에게 길을 알려준 것이 태양신의 사자 삼족오였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 삼족오가 한국과 관련됐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어 흥미를 끄는 상황이다.

▲힘과 권력 상징하는 쌍두독수리-피파랭킹 70위 러시아
이번 월드컵 개최국인 러시아의 엠블럼에는 쌍두독수리가 눈에 띈다. 이는 러시아 국장에 있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비잔틴 제국의 문장에서 유래했다. 쌍두독수리는 서방과 동방(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을 모두 아우른다는 의미로 힘과 권력을 상징하며 전통 계승과 중앙 정부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하기도 한다. 독수리 머리 위에 있는 3개의 왕관은 각각 러시아의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을 상징한다.

평소 축구 경기를 보면서 엠블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엠블럼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의미들이 함축돼 있었다. 국가의 역사와 정통성, 승리를 향한 의미 등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엠블럼의 무게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하지만 엠블럼에 담긴 장황한 의미보다 더욱 멋지게 다가왔던 건 엠블럼 위에 새겨진 별이었다. 엠블럼에는 별을 함부로 넣을 수 없다. 우승을 한 국가만 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다. 때문에 엠블럼에 별을 새겨넣은 팀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한민국 축구협회 엠블럼에 별을 하나 새길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가 될까.

자료출처 / 각국 축구협회 홈페이지, 피파 홈페이지, 네이버 지식백과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