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주식거래 수수료 0원… 월가에 대항한 '의적', 75번 문전박대 당하고 400만 고객 마음 훔치다

블라디미르 테네브·바이주 바트 로빈후드 공동창업자

밀레니얼 세대의 파격 발상
금융위기 원흉 지목된 월가 CEO들
퇴직금 챙겨 떠나는 모습에 자극
"주식 거래비용 획기적으로 줄이자"
수수료 수익 과감히 포기하고
예치금 이자 수익으로 운영비 충당

18~34세 이용자가 절반 이상
구글 투자 받기전 75곳서 거절 당해
트럼프 사위, 러시아 재벌 앞다퉈 투자
기업가치 50억달러 인정 받아

최근 온라인 게임식 부분 유료화 실험
투자 트렌드 바꾸는 '혁신' 일궈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증권 거래 앱(응용프로그램)인 ‘로빈후드’가 미국 투자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명 래퍼 스눕독과 제이 지(Jay Z)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만큼 벤처투자자의 관심도 한몸에 받는다. 귀족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는 중세 영국 인물 로빈 후드의 이름을 딴 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증권 거래 앱은 왜 주목받는 것일까.

로빈후드 앱의 아이디어는 2013년 개발자들이 웹사이트에 처음 올린 글에서 잘 알 수 있다. “수수료 무료, 주식 거래 건당 10달러 내는 것을 그만둬라.” 영업점과 리서치 보고서를 없애는 등 거래 비용을 줄여서 주문 한 건당 10달러가량의 주식 온라인 거래수수료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블라디미르 테네브 로빈후드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31)는 “스눕독을 비롯한 초기 엔젤투자자들은 기존 금융산업에 대한 (좋은 의미에서의) 반항심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이끄는 스라이브캐피털, 러시아 출신 벤처투자자 유리 밀너의 DST글로벌 등도 앞다퉈 로빈후드에 투자했다. 로빈후드는 지금까지 총 5억39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5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밀레니얼 세대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

투자자들의 눈은 정확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1년에 일어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를 목격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로빈후드 가입자가 빠르게 늘면서 최근 400만 명을 돌파했다. 18~34세 이용자 비중이 절반 이상이다.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외신들은 로빈후드의 인기 비결이 압도적인 편의성에 있다고 평가한다. 온라인 쇼핑하듯이 주식 매매가 가능하다. 앱을 다운로드하고 주식을 매매하는 데까지 20분이 채 안 걸린다. 한눈에 들어오는 주가 그래프 등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용자인터페이스(UI)도 장점이다.

테네브 CEO는 “로빈후드 앱의 특징 중 하나는 플랫폼에서 주식을 파는 사람보다 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점”이라며 “이들은 50여 개 종목의 주식을 한두 주씩 사모으는 방식으로 소액 포트폴리오 투자를 한다”고 설명했다. 과거엔 이런 투자에 수천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로빈후드 이용자들은 계좌를 등록하기 위해 현금 잔액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 또 미국에 상장된 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를 사고팔 때 거래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 외에는 수수료를 추가로 내지 않아도 된다. 로빈후드 측은 이용자들이 그동안 절약한 수수료 비용이 10억달러를 초과한다고 밝혔다.기존 미국 온라인 증권사들은 건당 4.95~6.95달러의 주식 거래 수수료를 받고 있다. 로빈후드가 인기를 끌면서 찰스슈와브 등 온라인 증권사는 수수료를 8.95달러에서 4.95달러로 내렸지만 없애지는 않고 있다. 반면 로빈후드는 영업점, 리서치 보고서, 분석 도구 등을 없애 운영비용을 줄이면서 수수료 수익을 과감히 포기했다. 예치금의 이자 수익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는 구조다.

로빈후드는 올초 수수료 없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거래 서비스도 내놨다. 대표적인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매수자와 매도자 모두에게 1.4~4%의 거래 수수료를 받고 있다.

75번의 문전박대 끝에 얻어낸 투자 유치무료 주식거래 앱의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한 공동 창업자 겸 CEO 테네브와 바이주 바트(33)는 30대 초반의 밀레니얼 세대다. 둘 다 스탠퍼드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두 사람은 2011년 뉴욕에서 헤지펀드와 은행을 대상으로 고빈도 매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크로노스리서치를 창업했다. 하지만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된 월가의 CEO들이 수백만달러의 퇴직금을 챙겨 떠나는 모습에 분노한 시민들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본 뒤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테네브는 “자동 거래 시스템으로 거래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는데도 금융사들이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거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로빈후드를 창업하고, 2015년 3월 앱을 출시하기까지 2년 반이 걸렸다. 테네브는 “순자산과 관계없이 모든 이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료 주식거래는 시장 질서를 뒤흔드는 파격적인 발상이자 시도였다. 아이디어의 진가를 처음 알아본 곳은 구글이었다. 테네브는 “구글벤처스로부터 300만달러의 시드머니(초기 투자자금)를 받기 전까지 75곳의 벤처투자사에서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부분유료화 모델 정착될까

수익 모델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은 초기 투자 유치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완전히 풀지 못한 과제다.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로빈후드가 선택한 방식은 온라인 게임에서 주로 쓰는 부분 유료화(freemium) 모델이다. 로빈후드가 지난해 내놓은 프리미엄 서비스인 ‘로빈후드 골드’는 매달 일정액을 내면 마진거래와 시간외 거래가 가능한 서비스다. 마진거래는 주식매매 방식의 하나로 매매대금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증거금을 증권회사에 예탁하면 필요 자금을 차입해 매매할 수 있는 신용거래를 말한다.

로빈후드 골드 회원은 월정액을 내면 마진거래를 할 수 있다. 월정액에 따라 차입액 규모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월 40달러를 내면 8000달러를 차입할 수 있다. 골드 회원은 주식시장 개장 전 30분, 마감 후 120분간 시간외 거래도 가능하다.가입자를 모으는 방식은 온라인 게임의 확률형 아이템과 비슷하다. 가입 시 추천자를 입력하면 신규 가입자와 추천자에게 각각 추첨 방식으로 주식 한 주를 준다. 예를 들어 80분의 1의 확률로 애플, 존슨앤드존슨 등의 주식을 받을 수 있다. 확률은 추첨 때마다 바뀐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