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에선 느끼지 못하는 흥겨운 군무의 향연', 국립오페라단 '유쾌한 미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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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윤호근)이 올리는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The Merry Widow)’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게 오페라야?’라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리아들로 이끌고가는 일반적인 오페라 세리아(정극 오페라)와 달리 연극처럼 계속해 독일어 대사가 들린다. 주인공 다닐로의 ‘옛날 옛날에 왕자와 공주가 있었는데’로 시작하는 노래 역시 한 곡 안에 대사와 노래가 섞여있다. 배우들은 노래와 연기에 더해 춤까지 춰야한다. 오페라를 기반으로 한 한 편의 뮤지컬 같은 느낌이다. 이를 충분히 의식했는 듯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는 “오페레타가 뮤지컬 공연과 비슷한 특성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 일반적 오페라극장이 아닌 뮤지컬에 특화된 극장에서 공연하게 됐다”고 말했다.음악 역시 다소 우울하고 서정적이며, 비극적인 멜로디가 주를 이루는 기존 오페라와 달리 밝고 유쾌하다. 오페레타가 갖고 있는 특징 때문이다. 오페라의 축소형으로 ‘작은 오페라’라는 뜻을 갖고 있는 오페레타는 작품 대부분이 이별과 죽음으로 점철되는 비극보다는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사랑을 다룬 희극적인 내용과 결말을 주로담고 있다.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프란츠 레하르(1870~1948)는 이야기를 왈츠, 폴카, 마주르카, 폴로네즈, 갤롭 등 대부분 춤곡으로 풀어간다. 공연에 나오는 왈츠 마저도 빠른 템포로 이어져 흥을 더한다.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의 젊은이들이 던지는 대사의 통속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작품을 봐야한다는 점은 21세기 관객들에게 다소 불편함을 던질 수 도 있다.
‘유쾌한 미망인’ 중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녜구쉬의 대사 중엔 “외교관과 숙녀의 차이. 외교관이 ‘예스’라고 말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고 (중략) 숙녀분이 ‘노’라고 말하면 ‘그럴 수도’라는 뜻이죠. (중략) 안 돼요... 돼요...”라는 부분이 나온다. 남성들의 여성 비하적 중창과 마초적인 행동들은 여성 관객로 하여금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이에 윤호근 예술감독은 “시대 착오적 성차별은 사라져야 하지만 남녀간 차이는 분명히 있다”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동체 안에서 조화롭게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의미를 당시 시대를 배경으로 가벼운 듯 의미심장하게 던졌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한나(소프라노 바네사 고이코에체아)와 그의 옛 애인인 다닐로(바리톤 안갑성)가 오해로 인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 위해 날카로운 대사를 주고 받는다. 서로에 대한 원망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한나와 다닐로는 직접 말하지 않고 각자 동화 속 이야기를 들려주며 확인한다. 알콩달콩한 사랑의 속삭임까지라면 모르지만 기존 오페라에서 느끼는 먹먹한 감동은 없다. 2시간 가까이를 이어가던 두 사람의 오해와 이를 통해 티격태격 벌이는 갈등구조가 후반부 단 한 번의 상황에 의해 급격히 풀리고 급 마무리되기 때문일까. 독일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수가 아닌 자막 대사에 집중하지 않으면 두사람이 어떻게 오해가 풀렸는지 놓치기 쉽다. 하지만 내용을 떠나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세가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몬테네그로 상류사회의 남녀 간 가치관을 알아가기 좋다.
공연의 또다른 볼거리는 발랭시엔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 김순영의 파격 변신이다.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등에서 봤던 서정적이고 가녀린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그야말로 놀라움을 금치 못할 수도 있다. 신분의 비밀을 가진 발렝시엔이 3막에서 긴 치마를 걷어내고 짧디 짧은 치마에 흥겹게 몸을 흔들며 1막에서 억눌렀던 복잡한 내면을 한 순간에 폭발시킨다. 이 장면에서 무대 뒤와 각석 중간에서 춤을 추며 갑자기 튀어나오는 남녀 무용수들을 옆에서 본다면 정통 오페라에서 느끼지 못한 신선함과 파격을 느끼게 된다.
‘유쾌한 미망인’의 백미는 3막에서 폭발하는 가수들의 합창이었다. 주연 배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극을 이끌어가는 오페라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선물이다. 특히 단순 떼창으로 들리기도 하는 뮤지컬보다는 소프라노와 바리톤, 베이스들이 만드는 묘한 화음도 꼭 즐길 부분이다. 합창과 함께 뮤지컬에서나 볼수 있는 군무도 볼만하다. 뮤지컬 ‘라카지’나 ‘헤드윅’,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와 흡사하다. 여기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점 하나. 춤과 대사는 뮤지컬과 유사하지만 마이크와 스피커에 의해 공연장을 채우는 인공적인 음악 대신 마이크 없이 오직 성악가가 내는 생 목소리의 울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듣는 맛이 매우 크다. 보통 3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뮤지컬과 달리 50분씩 두번으로 나눠져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 나흘동안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처음부터 끝까지 아리아들로 이끌고가는 일반적인 오페라 세리아(정극 오페라)와 달리 연극처럼 계속해 독일어 대사가 들린다. 주인공 다닐로의 ‘옛날 옛날에 왕자와 공주가 있었는데’로 시작하는 노래 역시 한 곡 안에 대사와 노래가 섞여있다. 배우들은 노래와 연기에 더해 춤까지 춰야한다. 오페라를 기반으로 한 한 편의 뮤지컬 같은 느낌이다. 이를 충분히 의식했는 듯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는 “오페레타가 뮤지컬 공연과 비슷한 특성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 일반적 오페라극장이 아닌 뮤지컬에 특화된 극장에서 공연하게 됐다”고 말했다.음악 역시 다소 우울하고 서정적이며, 비극적인 멜로디가 주를 이루는 기존 오페라와 달리 밝고 유쾌하다. 오페레타가 갖고 있는 특징 때문이다. 오페라의 축소형으로 ‘작은 오페라’라는 뜻을 갖고 있는 오페레타는 작품 대부분이 이별과 죽음으로 점철되는 비극보다는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사랑을 다룬 희극적인 내용과 결말을 주로담고 있다.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프란츠 레하르(1870~1948)는 이야기를 왈츠, 폴카, 마주르카, 폴로네즈, 갤롭 등 대부분 춤곡으로 풀어간다. 공연에 나오는 왈츠 마저도 빠른 템포로 이어져 흥을 더한다.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의 젊은이들이 던지는 대사의 통속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작품을 봐야한다는 점은 21세기 관객들에게 다소 불편함을 던질 수 도 있다.
‘유쾌한 미망인’ 중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녜구쉬의 대사 중엔 “외교관과 숙녀의 차이. 외교관이 ‘예스’라고 말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고 (중략) 숙녀분이 ‘노’라고 말하면 ‘그럴 수도’라는 뜻이죠. (중략) 안 돼요... 돼요...”라는 부분이 나온다. 남성들의 여성 비하적 중창과 마초적인 행동들은 여성 관객로 하여금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이에 윤호근 예술감독은 “시대 착오적 성차별은 사라져야 하지만 남녀간 차이는 분명히 있다”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동체 안에서 조화롭게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의미를 당시 시대를 배경으로 가벼운 듯 의미심장하게 던졌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한나(소프라노 바네사 고이코에체아)와 그의 옛 애인인 다닐로(바리톤 안갑성)가 오해로 인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기 위해 날카로운 대사를 주고 받는다. 서로에 대한 원망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한나와 다닐로는 직접 말하지 않고 각자 동화 속 이야기를 들려주며 확인한다. 알콩달콩한 사랑의 속삭임까지라면 모르지만 기존 오페라에서 느끼는 먹먹한 감동은 없다. 2시간 가까이를 이어가던 두 사람의 오해와 이를 통해 티격태격 벌이는 갈등구조가 후반부 단 한 번의 상황에 의해 급격히 풀리고 급 마무리되기 때문일까. 독일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가수가 아닌 자막 대사에 집중하지 않으면 두사람이 어떻게 오해가 풀렸는지 놓치기 쉽다. 하지만 내용을 떠나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세가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몬테네그로 상류사회의 남녀 간 가치관을 알아가기 좋다.
공연의 또다른 볼거리는 발랭시엔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 김순영의 파격 변신이다.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등에서 봤던 서정적이고 가녀린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그야말로 놀라움을 금치 못할 수도 있다. 신분의 비밀을 가진 발렝시엔이 3막에서 긴 치마를 걷어내고 짧디 짧은 치마에 흥겹게 몸을 흔들며 1막에서 억눌렀던 복잡한 내면을 한 순간에 폭발시킨다. 이 장면에서 무대 뒤와 각석 중간에서 춤을 추며 갑자기 튀어나오는 남녀 무용수들을 옆에서 본다면 정통 오페라에서 느끼지 못한 신선함과 파격을 느끼게 된다.
‘유쾌한 미망인’의 백미는 3막에서 폭발하는 가수들의 합창이었다. 주연 배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극을 이끌어가는 오페라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선물이다. 특히 단순 떼창으로 들리기도 하는 뮤지컬보다는 소프라노와 바리톤, 베이스들이 만드는 묘한 화음도 꼭 즐길 부분이다. 합창과 함께 뮤지컬에서나 볼수 있는 군무도 볼만하다. 뮤지컬 ‘라카지’나 ‘헤드윅’,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와 흡사하다. 여기서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점 하나. 춤과 대사는 뮤지컬과 유사하지만 마이크와 스피커에 의해 공연장을 채우는 인공적인 음악 대신 마이크 없이 오직 성악가가 내는 생 목소리의 울림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듣는 맛이 매우 크다. 보통 3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뮤지컬과 달리 50분씩 두번으로 나눠져 있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 나흘동안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