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생활 속 경제이야기] SPA가 초대형 매장을 고집하는 이유

SPA 또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기획·디자인, 생산·제조,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한 회사가 직접 맡아서 하는 의류 브랜드를 가리킨다. 유니클로, H&M, 자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SPA 브랜드는 수요와 유행에 맞춰 10여 일 만에 신상품을 대량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 SPA 브랜드의 매장 전략은 상당히 비슷하다. 저가 옷을 취급하는데도 매장 분위기가 고급스럽고 초대형 매장도 운영한다. 저가 옷을 취급하다 보니 이윤을 많이 남기기 어렵기 때문에 초대형의 고급스러운 매장을 운영하면 손해가 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소비자 심리를 고려한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다.
SPA 브랜드가 초대형 매장을 운영하는 이유는 매장을 크게 꾸며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려는 데 있다. 매장 크기가 작으면 출입구 주변에 있는 옷만 슬쩍 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매장이 크면 안쪽에 어떤 옷이 있는지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객을 매장 안으로 유인하기 쉽다. 일단 매장 안으로 들어온 고객은 다양한 옷을 꺼내 보거나 직접 입어 볼 확률이 높아진다. SPA 브랜드 옷은 무심코 매장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옷이 있을 때 구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체류 시간을 늘려 다양한 옷을 구경하도록 해야 충동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SPA 브랜드가 초대형 매장을 운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취급하는 의류가 저렴하기는 하지만 싸구려 옷은 아니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보통의 아울렛 매장은 옷을 접힌 채 팔거나 심지어 수북이 쌓아 놓고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매장이 크면 옷을 다양한 방식으로 진열할 수 있다. 옷에 따라 마네킹에 입혀 전시할 수도 있고, 옷걸이에 걸거나 매대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전시할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함으로써 싸구려 옷이라는 인상을 탈피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저가의 옷이지만 품질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SPA 브랜드 매장에는 여타 의류 매장과 달리 초대형 계산대가 있다는 점도 다르다. SPA 브랜드 매장에서는 고객 한 명이 여러 벌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보통의 고객은 계산대 줄이 길면 구매를 줄인다. 이 때문에 여러 벌의 옷을 구매한 고객들이 몰려와도 순식간에 계산을 마칠 수 있는 초대형 계산대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의류 매장 배치에도 치밀한 경제적 판단이 숨어 있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