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진 "실력 더 다듬어 LPGA서 日 하타오카와 진검승부 겨뤄야죠"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 챔피언 - 최혜진

1년도 안돼 KLPGA 4승 수확한 19세 '슈퍼루키'
장하나·오지현 등 '센 언니' 주눅들게한 無心타법
지독한 연습벌레…"천재보다 노력파로 불러주세요"
"퍼팅감 되찾아 '아일랜드 퀸'…안 좋았던 흐름 바꿨죠"
최혜진 프로가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8 대회 기간 아낌없는 응원을 해준 팬들을 위해 감사의 표시로 손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저 천재 아니에요. 한 50 대 50?”

1년도 안 돼 벌써 4승이다. 세계 최강 ‘센 언니’들 틈에 끼어 일궈낸 눈부신 성취다. ‘천재’라는 이야기에 귀가 쫑긋할 법도 하지만 그는 “저 진짜 노력 많이 해요!”라며 씩 웃었다. ‘땀과 눈물’이 50%쯤 된다며 기어코 ‘노력’에 방점을 찍고 마는 품새가 신인답지 않게 묵직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 2018 대회 챔피언 ‘슈퍼루키’ 최혜진(19·롯데)이다.연습그린 가장 오래 지키는 ‘노력형 천재’

그는 지난 21~24일 경기 안산 아일랜드CC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 내내 경쟁자들을 지배했다. ‘누구와 붙든 신경 안 쓴다’는 듯한 ‘무심타법(無心打法)’에 동반자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그와 1, 2라운드에서 경기한 장하나 오지현은 커트 탈락했다. 3, 4라운드에서 챔피언조로 함께한 이승현 박채윤 이효린은 후반에 흔들리며 최혜진에게 ‘아일랜드 퀸’ 자리를 내줬다. 고덕호 프로는 “최혜진은 언제든 풀스윙을 한다. 주저함이 없다. 그럼에도 비거리든, 정확도든 편차가 누구보다 작다”고 그를 평했다. 웬만한 베테랑들도 ‘이것 봐라?’ 하며 경쟁하려다가 샷이 슬슬 꼬이기 십상이라는 설명이다. 최혜진은 통산 4승 가운데 세 번이 역전승이니, 후반 집중력도 남다르다.

“자신 있게 치니까 정확하게 멀리 가는 거지 특별한 건 없어요. 동반자요? 그냥 제 플레이하는 거죠 뭐! 흐흐.”그는 대회 때면 연습그린에 가장 먼저 나오는 ‘얼리버드’다. 태권도에 재능을 보이던 열 살의 어린 나이에 골프채를 쥐여준 아버지(최길호 세주기업 대표)가 ‘연습이 재능’이라고 일러준 뒤부터 지키는 루틴이다. ‘성실’은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에 입문(2017년)한 이후에도 어기지 않는 철칙이 됐다. 최혜진은 “골프천재라는 말보다 노력파라는 얘기에 더 마음이 간다”며 웃었다.

“더 다듬어야 해요, 하타오카 만나려면”

샷 지표로는 이미 글로벌 챔피언급으로 손색이 없다. 올 시즌 KLPGA 투어에서 드라이버 비거리 3위(260야드), 페어웨이 안착률 25위(76%), 그린적중률 1위(81%)다. 그런데도 여전히 배가 고픈 듯한 표정이다. 지난달 E1채리티오픈에서 첫 커트 탈락 고배를 마신 이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린에 완벽하게 잘 올리고도 타수를 줄이지 못하는 퍼팅 때문이다. 그는 이번 4라운드 11번홀(파5)에서도 1m가 채 안 되는 짧은 퍼팅을 놓쳐 이효린에게 한때 1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후반엔 버디 퍼트가 홀컵에 이르지도 못한 ‘새가슴’ 퍼팅도 했다. 라운드당 평균 퍼팅 수가 30.3개로 34위다. 퍼팅을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커져가는 와중에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 우승이 그에게 온 것이다.“벌써 슬럼프냐는 주변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러다간 잊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경 레이디스컵 우승 덕분에 안 좋았던 흐름이 바뀐 셈이죠. 하지만 미국 무대로 가려면 아직 멀었어요.”

이런 생각이 최근 살짝 흔들릴 뻔했다. 동갑내기 라이벌 하타오카 나사(일본)가 지난 25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첫 승(월마트 아칸사스챔피언십)을 거둔 게 자극이 됐다. 일본 국가대표 출신인 하타오카는 여러 차례 국제대회에서 맞부딪쳤던 친구이자 적수다.

“국가대항전에서는 제가 이겼고, 지난해 일본여자오픈에선 제가 9등, 그 친구가 우승했어요. 진짜 승부를 아직 못한 거죠.”당장 끝장 승부를 보고 싶다는 얘기가 나올 듯도 했지만 최혜진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은 그 친구가 한 수 위라고 봐야 해요. LPGA투어 수준이 요즘 엄청 높아졌거든요. 일단 국내 투어에서 신인왕부터 확실히 굳히고 승수를 먼저 쌓아야죠. 그다음엔 당연히 진검승부고요. 호호.”

신인왕·상금·대상 3관왕 가즈아~

당장은 29일 개막하는 맥콜용평리조트오픈이 숙제다. 아마추어였던 그가 프로 무대에 나섰을 때 처음 우승 물꼬를 터준 대회다. 디펜딩 챔피언인 그가 이 대회마저 제패하면 타이틀 방어와 시즌 3승 선착, 통산 5승 달성 등 여러 개의 기록이 쏟아진다. 사실상 입지를 굳힌 신인왕을 넘어 현재 오지현에 이어 2위인 상금왕, 대상도 뒤집을 수 있다. 신인 3관왕은 지금까지 KLPGA 역사에서 송보배와 신지애만이 해본 일이다. 상승세가 지속되면 지난해 이정은이 일군 ‘6관왕(상금, 대상, 다승, 최저타수, 인기, 베스트 플레이어)’도 노려볼 만하다.

“주변의 기대가 큰 건 알아요.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죠.”

궁금한 게 한 가지 남았다. 비씨카드 대회 우승 부상으로 받은 1억원짜리 웨딩상품권의 용처다.“늦어도 8년 후에는 쓸 수 있지 않을까요? 근데 아직 이상형도 없어요. 헤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