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연구대상 될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

유승호 기자의 Global insight

영국·독일 등 3~4% 올리는데
한국만 16.4% 급격히 인상
고용 악영향 땐 반면교사
부작용 없으면 논쟁 종지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경제학계의 오랜 논쟁거리 중 하나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과 인건비 부담이 증가한 기업들이 고용을 축소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주장이 맞선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근거로는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데이비드 카드 UC버클리대 교수가 1994년 발표한 논문이 많이 인용된다. 두 사람은 시간당 최저임금을 4.25달러에서 5.05달러로 18.8% 올린 미국 뉴저지주의 패스트푸드업계를 연구했다. 분석 결과 최저임금을 올린 뒤에도 고용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연구는 전화 설문으로 자료를 수집해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는 최저임금 인상 후 일자리가 줄었는데 부정확한 자료를 활용해 정반대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제이컵 빅도어 미국 워싱턴대 교수 연구팀은 2016년 시애틀 사례를 연구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결론을 얻었다. 당시 시애틀은 최저임금을 2년에 걸쳐 시간당 9.47달러에서 13달러로 37.3% 올렸다.연구팀은 시급 19달러 이하 일자리가 6.8% 감소했고 근로시간은 9.4% 줄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대규모 체인점을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고 최저임금 인상 외에 경기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 연구로는 미국경제연구소(NBER)가 지난달 내놓은 ‘최저임금과 근로자 복지’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최저 소득층은 물론 차상위 근로자의 임금까지 올리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젊은 연령층 일부를 제외하고는 고용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주가 건강보험 등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복리후생을 줄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를 수행한 조너선 미어 텍사스A&M대 교수는 “(임금이 오르는 대신) 근무 유연성이나 무료 주차 혜택 등 근로자가 받는 다른 형태의 보상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최저임금 인상은 근로자에게 손해”라고 설명했다.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의 관계를 다룬 수많은 연구는 저마다 다른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이 같은 연구들이 깔끔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미국에선 재료 준비부터 조리, 서빙까지 전 과정을 로봇이 하는 무인 햄버거 가게가 등장했다. 한국에서도 분식점 등의 종업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로봇과 자동화기기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해 가는 추세가 뻔히 보이는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탄력성이 얼마인지를 따지는 전문가들의 논쟁은 어쩌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최저임금을 올려도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적정한 수준(moderate level)’으로 올리면 고용에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크루거 교수도 “시간당 15달러가 넘는 최저임금은 국제적 경험을 넘어서는 것이고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도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열린 대담에서 “적정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최저임금을 꾸준히 올리면서도 인상 폭은 신중히 결정한다. 올 들어 최저임금을 올린 영국(4.4%), 호주(3.5%), 독일(4.0%)은 인상률이 3~4%대다.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주에서 10~20%씩 올린 사례가 있지만 올해 한국처럼 지역과 업종, 연령을 가리지 않고 16.4%를 인상한 사례는 흔치 않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친 영향을 정확히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고용을 줄이는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최저임금을 둘러싼 오랜 논쟁은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고용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난다면 한국의 경험은 다른 나라에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어느 경우든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은 세계적인 연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