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김동석 한인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美·北 정상 합의문은 양해각서 불과… 구속력 위해선 美 의회 잡아야"

미국서 한인 정치 세력화 주도하는 김동석 한인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만난 사람=이심기 정치부장
김동석 한인시민참여센터(KACE) 상임이사는 “미국에서 한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미 의회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미국이 동맹정신에 기반해 한국의 이익을 지켜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김동석 한인시민참여센터(KACE) 상임이사는 첫마디에서 북한 문제를 보는 한국의 편협한 시각을 꼬집었다. 재미 한인단체인 KACE는 미국 내 한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1996년 설립됐다. 그는 “미국은 앞으로 어떤 정책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만을 따질 것”이라며 “한인들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미국 내에서 한국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매년 7월 워싱턴DC에서 여는 미주 한인 풀뿌리활동 콘퍼런스(KAGC)도 이 같은 목표에 닿아 있다. 올해로 다섯 번째인 이 행사에는 미 상·하원에서 25명의 의원이 참석한다. 한인 유권자들이 미 의회 상·하원의 외교위원장을 불러놓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압박’하는 자리다. 행사 준비를 위해 잠시 귀국한 김 이사를 만나 향후 미·북 관계와 북한 비핵화 전망을 들어봤다.

만난 사람=이심기 정치부장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어떻습니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만난 뒤 전쟁 위험이 사라졌다는 안도감이 커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 역시 올라가고 있습니다.”

▶미국 정치권의 냉소적인 반응과는 사뭇 다르군요.“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한창 ‘말폭탄’ 전쟁을 벌일 때 의회는 북한과 대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죠.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막상 평화 공세를 하니까 민주당은 무조건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트럼프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정치논리입니다. 공화당 내에서도 반(反)트럼프 정서가 강합니다. 미·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것이죠. 뉴욕타임스(NYT), CNN 등 주류매체도 마찬가지입니다.”▶미·북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 아닌가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는 회담의 전제조건이 아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을 뜻하는 리비아식 모델은 아니라고 했고, 회담이 여러 번 이어질 것이라고 계속 말했습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건가요.“미국이 단 한 번의 회담에서 CVID를 받아내려고 한 게 아닙니다. 합의문에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 (내용이 없다는) 평가가 있지만 그게 첨예한 이슈는 아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회담을 11월 중간선거에 이용하려 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중간선거 승리를 통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입니다. 그런데 공화당 내 트럼프 쪽 세력이 별로 없습니다. 미·북 정상회담을 활용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을 접수하는 게 목표입니다.”

▶선거 때문에 북한과 대화를 했다는 뜻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이후 트럼프의 리더십에 대한 여론이 달라졌습니다. 기대 이상의 효과였죠. 미 의회에선 여전히 미·북 회담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팽배합니다. 그 틈을 파고들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가능할까요.

“지난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미·북 정상회담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신문에 기고까지 했습니다. 실제 미국인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북핵 문제 해결의 주체는 미국 정부의 몫 아닌가요.

“현재로선 미·북 회담의 결과는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일 뿐입니다. 앞으로 ‘디테일’을 넣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평화협정 체결과 대북 제재의 실질적 완화를 위해서는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의회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확보돼야 합니다.”

▶이미 미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입니다.

“미·북 회담 관련 안건이 의회로 가면 상원 외교위를 통과해야 합니다. 의결 정족수는 3분의 2 이상입니다. 지금 상원의 공화당 의석은 51석입니다. 간신히 절반을 넘을 뿐입니다.”

▶현재의 원구성으로는 협정 비준이 어려운가요.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미·북 회담에 대한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한·미 훈련 중단, 미군 철수 등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도 한·미동맹 약화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오로지 국익에 꽂혀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미국의 여론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 흐름을 정확하게 보려면 미국 유권자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도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제기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한·미동맹의 관점에서 미국을 이해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과 협상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야 합니까.

“북한 비핵화를 위한 프로세스를 이어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도 냉전시대의 시각으로 미국을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미국에선 우리가 갖고 있던 동맹 개념이 없어진 지 오래됐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국익을 일치시키는 논리 개발이 중요합니다.”

▶한국을 위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이겨야 하는군요.

“그렇습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대북 제재가 풀려야 하는데 열쇠는 의회가 쥐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도 의회에서 풀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 의회를 직접 움직일 수는 없습니까.

“어렵습니다. 저도 미국 의원들과 친분이 있지만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민주당 의원들도 당 입장에서 이탈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미국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고 미국 내 북한에 대한 여론이 바뀌고 있는 만큼 한인사회를 활용하는 방안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대미외교력은 어떻습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했을 때 의회의 지지 결의안을 이끌어내기 위해 한 달간 뛰어다녔습니다. 435명 하원의원 중 동의하는 의원 숫자가 공화당 9명, 민주당 6명뿐이었습니다. 하원 외교위에 상정도 못하고 폐기했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문재인 정부가 주미 대사관에 새롭게 공공외교대사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전통적 외교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미국 내 시민단체, 교류 재단 등을 통해 미국 내 친한 여론을 조성해야 합니다.”

▶현지 한인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한국 정부가 미국의 한인들을 정치세력화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미국은 내부가 어려워질수록 다른 나라 정부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합니다. 국익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국 내에서 의회와 행정부를 움직이려는 정치세력을 형성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는 어떻습니까.

“중국 정부는 미국 내 중국계 시민들에게 ‘미국에서 중국을 만들라’는 정책을 펼칩니다. 지금 미국에서 현안이 있는 나라들이 자국계 시민을 정치세력화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KACE처럼 미국 내 한인들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군요.

“그렇습니다. 유권자의 힘을 통해 의회를 압박해야 합니다. 그래야 트럼프 정부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도 의회를 움직여야 합니다. 미국 관점에서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한국 스스로 국익을 지켜내는 첫 단계입니다.”

■김동석 상임이사는…

美서 20년 넘게 韓人 권익운동… '위안부 결의안' 하원 통과 주도

김동석 시민참여센터(KACE) 상임이사(60)는 미국에서 20년 넘게 한인 권익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회활동가다. 1980년 중반 미국 유학을 갔고 1992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을 계기로 한인 권익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한인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활동하는 NGO(비정부기구)인 KACE를 설립, 미국 내 한인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방위로 노력해오고 있다. 2007년 미 의회에서 위안부 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한·미 간 비자 면제 프로그램 등 풀뿌리 한인 권익향상 운동을 주도했다.

김 이사는 미국 주류 정치권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한국 정부의 대미 외교를 물밑에서 지원하고 있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 미국 홍보대사에 위촉돼 미국 내 정계 주요 인사의 방한을 추진하고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방미 당시 상·하원의원 지도부 간담회 등을 물밑에서 주선하는 역할을 맡았다.2008년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는 소수계 전략팀을 담당했다. 2016년 미 대선에서는 한인 유권자센터를 열어 선거등록률 80%와 투표율 80%를 목표로 한 ‘8080캠페인’을 펼쳤다. 한국 정부의 국민훈장 동백장과 미 의회 인권상을 받았다.

정리=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