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 글로벌리스 (2)] 천차만별 '사회적 키스'

2016년 3월 초 스페인 대사로 재직 중이던 필자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스페인 남성 하원의원 두 사람이 뜨겁게 포옹한 뒤 입을 맞췄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정치적 신념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키스를 한 것이다. 이 키스는 ‘사회주의 형제 키스’에서 유래했다. 형제 키스는 19세기에 시작된 노동자 운동에서 평등, 우애와 연대의식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이후 볼셰비키 혁명을 거쳐 공산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자 공산권 지도자 사이의 인사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형제 키스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1979년 10월 초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의 입맞춤이었다. 지금도 베를린 장벽에는 이들의 입맞춤이 그려져 있다. 1986년 호네커는 동독을 방문한 고르바초프와도 입맞춤을 했다. 그러나 불과 11일 후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요구를 거부한 호네커가 축출됐으니 당시의 입맞춤은 가히 ‘죽음의 키스’라 할 만하다. 예수는 자신에게 입맞춤한 유다의 배반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이처럼 키스 뒤에 오는 신과 역사의 섭리는 오묘하기만 하다. 오늘날 형제 키스는 마피아 조직원 간에도 행해진다. 키스를 통해 강한 연대감을 확인하고 경찰에 체포되더라도 침묵을 지키겠다는 의사표현이다.정해진 규칙은 없어

키스는 영장류 어미가 이가 없는 새끼들에게 음식을 씹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준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생존수단에서 시작된 키스가 사랑의 표현과 인사 방법이 됐다. 후자를 낭만적 키스와 구분해 사회적 키스라고 한다.여러 인사 방법 중에서 사회적 키스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살았던 필자에게도 키스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나라, 지역, 심지어 가족에 따라 키스의 방법이나 횟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과 중남미 등 서양사회에서는 친구와 만나거나 헤어질 때 또는 가족이 아침에 일어나거나 잠자리에 들 때 뺨이나 이마에 키스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발에 하는 키스는 과거 교황에게만 행해졌는데 최고의 존경과 복종을 나타낸다. 손 키스는 부인이나 숙녀에게 행해진다.

뺨 키스는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에서 남녀 사이 또는 여자들 사이에서 행해지는데 일부 중동지역에서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행해진다. 키스 횟수는 나라 또는 지방에 따라 다르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에서는 두 번 키스를 한다. 처음에는 오른뺨, 나중에는 왼뺨에다 한다. 잘 모르는 사이는 악수로 대신한다. 프랑스에서는 246가지 종류의 치즈만큼이나 키스도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파리, 툴루즈와 플랑드르 지방에서는 두 번, 남부 마르세유 지방에서는 세 번, 서부 낭트에서는 네 번이나 키스를 한다. 대부분의 북부 유럽 국가에서는 처음 만났을 때 악수하며 친구 사이에는 한 번의 키스로 충분하다.아랍 세계에서는 두 번 키스를 하나 이성 간에는 하지 않는다. 아시아에서는 사회적 키스가 통용되지 않는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나라와 지역에 따라 키스 횟수가 다르다. 브라질에서는 보통 한 번 키스하지만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세 번까지도 한다. 멕시코,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에서는 서로 껴안고 오른쪽 뺨에 한 번 키스한 뒤 친근함의 표시로 어깨를 몇 번 두드린다. 이를 ‘아브라소’라고 한다. 어느 쪽 뺨에 먼저 하느냐도 나라에 따라 다르다. 프랑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오른쪽 뺨에 먼저 하는 반면, 포르투갈에서는 왼쪽 뺨에 먼저 한다.

키스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적용 가능한 규칙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세 가지 유용한 지침이 있다. 첫째, 사회적 키스는 여성이 주도한다는 점이다. 즉, 여자가 키스를 원하지 않을 때는 악수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둘째,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반응이다. 상대방이 불쾌하게 생각한다면 안 하는 것이 낫다. 셋째, 상대방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키스를 자제해야 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의 루돌프 빙 감독은 단원들이 독감으로 고생하자 경고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만 키스하시오.” 후일 조류인플루엔자가 세계적으로 유행했을 때 시민단체들은 ‘키스 안 하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상대의 반응을 살펴야스웨덴 출신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렇게 말했다. “키스는 말이 불필요해질 때 말을 멈추게 하기 위해 자연이 고안해낸 사랑스러운 요술이다.” 키스로 두 여자를 오랫동안 침묵하게 한 사례를 보기로 하자. 한 영국 외교관이 기차여행을 하고 있었다. 같은 칸에는 두 중년 부인이 함께 탔는데 부인들은 계속해서 깔깔대며 이야기를 했다. 기차가 터널로 들어서자 열차 안이 깜깜해졌다. 그때 그 외교관은 자기 손에 수차례나 쪽소리 나게 입을 맞췄다. 기차가 터널에서 나오자마자 그는 부인들을 보며 말했다. “두 분 중 누구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될지 모르겠군요.”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