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원회 행정' 혼란, 예고된 결과다

청와대가 각종 위원회를 통해 중요 정책을 사실상 결정하는 ‘위원회 행정’이 도마에 올랐다. 위원회가 정부 부처와 협의 없이 제시하는 방안이 정책 혼선을 초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지난 3일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일체의 공론화 절차 없이 불쑥 발표한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 권고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획재정부가 즉각 거부하고, 청와대가 “자문기구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당정은 ‘추후 검토’로 정리했지만 국민들은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자문특위는 토지공개념, 국민소환제 같은 급진적 조항을 담은 개헌안을 내놔 논란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법무부와 국무회의 같은 법적 기구는 있으나마나였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장은 최저임금 속도 조절을 언급한 김동연 부총리를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책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결정하는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배경이다.가동 중인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7개인데도 이 모양인데, 대선 공약집에서 신설을 약속한 위원회는 17개에 달한다. 18부(部)5처(處)인 정부조직에 맞먹을 판이다. 위원회들의 인적 구성도 문제가 많다. 외부위원의 절반 이상을 친(親)정부 성향 인사들로 채워 다양한 의견과 중립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이번 금융소득 종합과세 혼선도 실무 경험이 거의 없는 좌파 인사들끼리 밀실 논의를 한 게 원인이었다.

위원회가 투명하고 전문적이며 중립적으로 운영된다면 문제삼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조차 “위원회가 공약보다 더 강력한 안을 제시해 난처하다”는 걱정이 나올 정도면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위원회가 득세할수록 내각 역할은 쪼그라든다.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위원회가 국민 삶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 정책을 주도하는 것은 정상적인 국정운영이라고 보기 어렵다. 책임은 없이 권한만 틀어쥔 위원회에 계속 의존할 경우 정책 혼선은 언제든 재연될 것이다.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의 출발점은 ‘권한과 책임의 일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