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위급회담 美태도에 불만… 폼페이오, 김정은 면담도 불발

비핵화 워킹그룹·동창리 실험장 폐쇄 가닥에도 美상응조치 미흡에 北 불만
美 FFVD와 北 '완전한 비핵화'에 의견차이 클수도…북미, 팽팽한 입장 차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박 2일간의 평양 방문 일정을 마쳤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면담하지 못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이전 두 차례 당일치기 방북 때도 모두 김 위원장을 만났지만, 시간 여유가 있는 평양 방문이었음에도 김 위원장과 면담이 불발된 것이다.

지난 2일(현지시간)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예고하면서 "(김정은) 북한 지도자와 그의 팀을 만날 것"이라고 했으나, 예측은 결국 빗나갔다.

폼페이오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친서도 휴대하고 있었지만, 직접 전달하지 못한 채 협상파트너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통해 건네야만 했다.김정은 위원장과 면담 불발은 이번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보여준 미국측 입장에 대한 북한의 불만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에서 떠난 직후 발표한 외무성 담화를 통해 "회담결과는 극히 우려스러운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국측이 조미(북미)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부합되게 건설적인 방안을 가지고 오리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기대와 희망은 어리석다고 말할 정도로 순진한 것"이라고 밝혔다.

외무성은 북미간 신뢰조성을 강조하면서 "단계적으로 동시행동원칙에서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실현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그러면서 "(미국은) 정세악화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기본문제인 조선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이미 합의된 종전선언문제까지 이러저러한 조건과 구실을 대면서 멀리 뒤로 미루어 놓으려는 입장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은 6일부터 약 9시간에 걸쳐 회담했지만,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하는 조치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을 떠나기에 앞서 풀 기자단에게 비핵화 시간표와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의 신고 문제를 논의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며 "논의의 모든 요소에서 우리는 진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주목된다.일단 이번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통해 북미 양측은 비핵화 검증 등 핵심 사안을 논의할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쇄 방법을 협의할 후속회담을 하기로 했다.

또 오는 12일께 판문점에서 6·25전쟁 때 실종된 미군 유해의 송환 문제를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를 분석해보면 미국이 관심을 가진 비핵화와 미군 유해 송환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세부적인 논의로 들어간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성 있는 로드맵을 만들고 합의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서 미국의 관계정상화 및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시간표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해석도 할 수 있다.
김영철 부위원장이 7일 오전 회담을 시작하면서 폼페이오 장관에게 "어제 심각한 논의를 생각하느라 잠을 잘 못 주무신 것 아니냐"며 뼈있는 인사말을 건넨 데서도 북미 간 이견은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이어 김 부위원장이 "분명히 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말한 데 대해 폼페이오 장관이 "나 역시 분명히 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답해 팽팽한 신경전을 연출하기도 했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은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유예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관계정상화나 제재 문제 등에서 진전된 입장을 원할 것"이라며 "미국쪽에서 이런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비핵화 조치도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비핵화 시간표를 짜면서 상응하는 미국의 관계개선 및 안전보장 시간표도 함께 요구했는데도 미국이 적절한 답을 하지 않자 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을 접견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을 수 있다.

참여정부 시절 남북대화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북한은 북쪽을 찾는 상대방이 가져온 메시지를 들어보고 최고지도자가 나설지를 결정한다"며 "만약 미국쪽에서 오늘 오전까지 북한이 원하는 답을 줬다면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은 성사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면담 불발에도 김 위원장이 김영철 부위원장을 통해 폼페이오 장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달한 것은 현재 북미간의 대화국면을 깨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외무성도 담화에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 쪽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제시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김 위원장이 면담에 나서지 않은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표현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북한은 사실상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평양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안전 보장, 미군 유해송환이라는 세 가지 목표에 대해 폼페이오 장관은 매우 확고하다"며 CVID에 대한 우리의 입장도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 외무성이 담화에서 "(미국은)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밝혀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또 김영철 부위원장이 7일 오전 회담 모두 발언에서 "미국과 전 세계 정계에서 우리 회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언급한 것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이 발언은 미국 이외에 다른 국가들도 북미회담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부각한 것으로 최근 김정은 위원장의 잇따른 방북으로 관계를 복원한 중국 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얘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