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산호로 만든 이바탄 하우스… 울퉁불퉁 자연 그대로의 골목길, 이보다 더 풍요로울 수 없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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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E6
여행의 향기
조은영의 무브무브 (2) 세상에 이런 곳이 ! 필리핀 바타네스주 삽탕, 이바얏 섬

삽탕-글·사진 조은영 여행작가 movemagazine01@gmail.com


포트를 마주보고 당당히 서 있는 레몬색의 건물은 1814년에 완공된 이바나 성당(San Jose de Ivana Church)이다. 바다와 삽탕 섬을 조망할 수 있는 이바나 성당은 거센 바닷바람과 지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보존이 잘돼 있는 편이다. 스페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밝은 색상의 파사드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바닷가의 정취가 더해져 운치가 그만이다.
‘이 가게는 정직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너무나 작습니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머물 자격이 있습니다(BE HONEST! Even if others are not, even if others will not, even if others can not).’손님들은 필요한 것을 고르고 노트에 구입한 물건을 적고, 상자에 돈을 넣고 간다. 일종의 무인카페다. 아니스티 스토어는 1995년 삽탕 섬에서 교사를 하던 엘레나 가스타뇨가 문을 열었다. 바탄 섬과 삽탕 섬을 오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공간,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물과 커피, 스토브를 둔 것이 시작이었는데 2000년에 지진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지금의 자리에 새로 열었다. 사람들이 붙인 ‘아니스티 스토어’란 이름의 공간엔 기념품, 음료, 허브, 먹거리 등이 준비돼 있고 누구나 쉬어가면서 이 가게의 철학을 배운다. 범죄율 0%, 바타네스의 순수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삽탕 섬으로 가는 날. 파도가 넘실넘실, 배가 울렁울렁, 파도가 꽤 높다. 테마파크에 있는 보트처럼 알록달록 귀여운 모양의 배는 오늘처럼 파도가 높아도 절대 뒤집히지 않도록 곡선을 잘 살려 만들었다. 이 전통배의 이름은 팔루와(Faluwa)다. 이런 파도가 꽤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낚싯대를 내리고 고기를 잡는 현지인들도 있다. 파도가 작은 배의 한 면에 닿으면서 부서져 내리는 모습, 이른 아침 생기 있는 햇빛이 짙푸른 해수면, 부서지는 파도와 만나면서 만드는 다양한 빛을 넋 놓고 바라보다 보면 금방 삽탕 섬에 도착한다. 배 타고 내릴 때 선원이나 탑승자나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짐을 들어주고 날라준다. 배는 매일 오전 6시부터 이바나 포트에서 출발한다. 돌아오는 배는 오후 2시, 날씨에 따라 오후 5시께까지도 운행한다. 삽탕 섬 반나절 투어를 하는 이들은 오전 배로 들어가 오후 2시 배를 타고 나오면 된다. 우린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으니 좀 더 여유가 있다. 삽탕 섬에 내리면 환경세를 내야 한다. 인당 200페소.미리 예약해 둔 지프니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봤다. 마을, 아름다운 해변, 뷰포인트, 등대, 성당…. 바탄 섬 관광과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지만 삽탕 섬에선 이바탄 사람의 생활을 훨씬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쌓아 올린 산호와 돌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창문과 창문에 달린 바람에 휘날리는 천들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집 안에 있는 가구들도 사람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 하니 하나하나 자세히 둘러보게 된다.
차바얀 마을의 삽탕 방직공협회에선 코곤 잎을 엮어 지붕을
만드는 법, 마른 풀을 빗어내려 우천 시 가발처럼 착용하는 머리장식 바쿨(Vakul)을 만드는 걸 구경할 수 있다. 대대로 계승된 이바탄 전통 방직 시연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도시인의 눈으로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어쩌면 아직도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싶지만, 마을은 더없이 깔끔하고 잘 정돈돼 있었고 사람들의 표정은 이보다 풍요로울 수 없다. 골목 사이로 유유히 걸어 다니는 닭, 염소, 개와 고양이,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울려 퍼진다. 어디에도 결핍의 구석은 없다.
야자수가 빼곡히 들어선 높은 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앞으로는 파랗게 반짝이는 바다가 흐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의 사비독 마을에선 부리가 구둣주걱 모양의 저어새도 만났다. 멸종 위기의 새라 신기하기만 했다. 홍콩인들이 마을의 돌들이 홍콩의 것과 닮았다 해서 ‘리틀홍콩’이란 별명을 붙인 숨낭가 마을은 남서쪽 끝에 있어 항구와 가장 멀다. 삽탕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삽탕에서 가장 유명한 모롱해변에 들렀을 때도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모롱비치는 바타네스 전체를 대표하는 해변이라 해도 좋을 아름다운 화이트 비치다. 해변이 크진 않지만, 필리핀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로 뽑히기도 한 곳이다. 여기엔 수백만 년 동안 이어져 온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진정한 자연의 작품인 아치모양의 바위도 볼 수 있었다. 해변 한쪽에는 작고 아늑한 나카부앙 동굴이 자연 그늘을 만들어 준다. 이곳에서 보는 풍광이 아름다워 모롱비치는 나카부앙 비치라고 불리기도 한다.
삽탕의 밤, 문명에서 멀어질수록 행복하다
삽탕에서 알아둘 것이 있다. 밤 12시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는 전체 섬에 전기가 차단된다. 물론 오후 10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이바탄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 냉장고는 어떡하냐고? 그런 전자제품, TV, 에어컨도 이 섬에선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다. 삽탕 섬에선 작정하고 현지인들의 집에 머무는 홈스테이 경험을 한다면 이것 또한 또 다른 멋진 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바타네스의 마지막 유인도, 이바얏(Itbayat)은 어떨까? 필리핀 최북단에 있는 이바얏 섬은 바타네스의 유인도 중 면적이 가장 크고 3000여 명의 이바탄이 살고 있다. 붉은 토양, 깎아지른 절벽, 인생 하이킹, 낚시, 다이빙, 동굴 탐험 등의 흥미로운 체험과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있지만 이곳에 가긴 쉽지 않다. 바탄 섬에서만 네 시간 배를 타야 하고, 워낙 오지이다 보니 모든 것의 물가가 비싸다. 여행 자체가 내공이 좀 필요한 고급 전문가 코스 정도 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이바얏 섬에 가 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상 이런 곳은 또 없을 테니까!조은영 작가는…
한 권에 한 지역, 한 도시, 한 마을만 얘기하는 트래블 매거진 ‘MOVE’ 발행인이다. 책에서 못다 한 여행지의 깊은 이야기를 ‘여행의 향기’에서 풀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