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통상전쟁으로 시험대 오른 시진핑… '중국몽' 위기인가, 기회인가

美와 통상전쟁 선택한 중국
"중국 굴기 역사적 기회될 것"

통상전쟁 본질은 美·中 패권다툼
中 전방위 공세에 위협 느낀 美
첨단산업 육성 '중국제조 2025' 견제

"中 낙관할 수 있는 상황 아니다"
통상전쟁 장기화로 경제위기땐
시진핑 장기집권 최대 걸림돌 될 것
‘중국 굴기(起·우뚝 섬)를 위한 마지막 관문인가, 경제 위기를 자초하는 무모한 도전인가.’

초강대국 미국과의 통상 전면전을 벌이게 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리더십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미·중 통상전쟁이 ‘중국 굴기’와 ‘중국몽(中國夢·중화민족의 부흥)’을 실현하려는 시 주석 도전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중국 내 전문가들은 집권 2기를 맞아 ‘시황제’로 불릴 정도로 절대 권력을 거머쥔 시 주석이 통치 6년 만에 가장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몽 구현 기회로 삼자’는 중국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글로벌타임스는 이번 통상전쟁이 “중국 굴기의 마지막 관문이자 역사적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 7일 사설을 통해 “중·미 무역전쟁이 시작되면서 중국 사회는 미국이 촉발한 전쟁에 분노하고 다수가 정부의 대응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은 사회적 활력을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현재의 정치체제 아래 국민의 잠재된 열의와 열망을 방출해 결국 모든 사회 구성원이 번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도 시 주석에게 힘을 보탰다. 리 총리는 6일(현지시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동유럽 정상회의에 참석해 “중국은 외부 상황에 상관없이 개혁·개방을 확대해 경제가 안정적으로 개선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우선주의에 맞서 유럽 국가들도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중국에선 통상전쟁을 피하기 어렵게 된 만큼 이를 중국몽을 구현하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몽은 시 주석이 2012년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에 오른 직후 처음으로 내세웠다.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이 대외정책의 원칙으로 제시한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은밀히 힘을 기른다)’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이후 중국의 대외정책은 중국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면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는 ‘분발유위(奮發有爲·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한다)’로 바뀌었다.

◆핵심은 미·중의 헤게모니 다툼이번 통상전쟁의 바탕에는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미·중의 양보할 수 없는 다툼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은 무역불균형 문제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문제 삼고 있지만 중국의 굴기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미 정부는 중국이 첨단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 로드맵을 통해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미국을 뛰어넘겠다는 구상을 명시하자 직·간접적으로 불쾌감을 표출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첨단기술산업 지배 계획이 미국과 많은 다른 나라들의 성장을 저해하고 기술과 지식재산권을 빼앗아가는 일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제조 2025는 5대 프로젝트와 10대 전략산업으로 짜여 있다. 중국 정부는 제조 강대국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3단계 계획을 세웠다. 국가별로 등급을 1등급(미국), 2등급(독일 일본), 3등급(중국 영국 프랑스 한국)으로 분류한 뒤 1단계(2016~2025년)에선 제조업 강국 대열에 들어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단계(2026~2035년)에서는 독일과 일본을 넘어 강국의 중간수준에 진입하고 3단계(2036~2049년)에 최선두에 서겠다는 구상을 담았다.미국으로선 중국이 ‘기술 도둑질’을 통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우주기술 등 군사력과도 직결되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을 넘어서려는 것을 경제적으로나 정치·외교적으로 방관하기 어렵다. 반면 시 주석은 중국 굴기와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중국제조 2025를 강조하면서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 위협받을 수도”

전문가들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기조를 감안할 때 중국이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2012년 집권한 뒤 절대권력을 다져온 시 주석이 완전히 달라진 상황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줄을 잇고 있다. 미·중 통상전쟁이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위협하는 최대 걸림돌이 될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제관계 전문가인 스인훙 인민대 교수는 “통상전쟁이 대규모로, 상당 기간 지속된다면 중국 경제와 금융시장은 분명히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중국 굴기와 중국몽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평론가인 천다오인 상하이정법대 교수는 “미·중 통상 갈등이 중국 경제의 침체를 부르면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은 경제적 성과 덕분에 확보됐다”며 “통상전쟁 탓에 경제적 위기가 온다면 그 정당성이 훼손될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미국 캘리포니아대 중국학 전문가인 페리 린크 교수도 “경기 침체는 반체제 인사들이 야기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시진핑 체제의 안정성에 위협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이 새로운 민족주의를 앞세워 위기를 극복하려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