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화재, 팔아야 할 전자 주식 16조 달해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 땐
생명 14.3조·화재 1.6조 매각

박용진 "삼성생명법 종결판"
이종걸 의원 법안보다 강경
연내 국회 통과 가능성

삼성 "국회 논의 지켜보겠다"
더불어민주당이 삼성 금융계열사의 지배구조 개편을 강제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8일 내놨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일정 한도 이상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의무화하는 보험업법 개정이 통과되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삼성이 사실상 뾰족한 수단이 없음에도 정부와 여당이 퇴로도 열어주지 않은 채 압박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금융업계에서 제기된다.
◆여당, 2년 만에 개정안 발의현행 보험업법 감독규정은 시가 평가를 기준으로 하는 은행, 증권사 등 다른 업종과 달리 ‘주식 또는 채권의 소유금액은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당과 시민단체는 현 보험업법이 ‘삼성 특혜’라고 주장해 왔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원가 기준으로 약 5386억원이다. 삼성생명 총자산(283조원)의 0.2%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가 평가 시 삼성전자 지분가치는 지난 6일 기준 22조8159억원으로, 총자산의 8.1%에 달한다. 보험업법의 총자산 대비 한도(3%)보다 5.1%포인트(14조3259억원) 초과한다.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가치는 시가 평가 시 3조9872억원으로, 총자산(76조원)의 5.2%에 달한다. 총자산 대비 한도를 2.2%포인트(1조6928억원) 초과한다.

민주당은 2014년 19대 국회 때 김기식 전 의원이 보험사의 지분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처음으로 발의했다. 그러나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통과가 무산되자 2016년 6월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이종걸 의원이 똑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다.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이날 발의한 법안은 이 의원이 2년 전 발의한 법안과 대부분 일치한다. 다만 지분 매각기한을 당초 7년에서 5년으로 오히려 단축했다.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금융위 승인을 얻어 기한을 2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이번 개정안엔 계열사 주식 한도 초과분에 대해선 의결권을 제한하며, 매각 차익을 보험회사 손실 보전용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국회에서 해결해 달라는 금융위

박 의원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개정안은 금융위와도 협의를 거쳤다”며 “금융위도 보험업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큰 틀에서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이날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한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개정안에 대해 박 의원 측과 실무 협의를 한 건 맞다”며 “법안 발의를 통해 국회에서 논의의 장이 마련된 것에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금융업계는 이날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이 정부와 사전에 협의했기 때문에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되고, 연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금융위는 지금까지 삼성생명의 계열사 주식 매각과 관련해선 국회 입법이 우선이라는 의견을 고수해 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보험업법 감독규정 개정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법 개정으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이 시장에 미칠 후폭풍을 우려한 금융위가 국회에 공을 떠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사 임원은 “16조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이 시장에 쏟아지는 데 따른 충격과 이로 인한 삼성 지배구조 약화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금융위가 통합감독법 제정 및 보험업법 개정 부담을 국회에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 관계자는 “국회와 정부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