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들은 통상전쟁보다 나라 안 '규제폭탄'이 더 두렵다

결국 올 것이 왔다. 서로 가시 돋친 ‘말폭탄’을 주고받던 미국과 중국이 실제로 ‘관세폭탄’을 투하하는 전면전에 돌입한 것이다. 미국은 기존 500억달러 외에 추가로 5000억달러어치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도 불사할 태세이고, 중국은 “뺨 맞으면 주먹으로 돌려주겠다”고 맞서고 있다. 한국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세계 1, 2위 경제대국 간 치킨게임이 어떻게 전개될지 안갯속이다.

하지만 통상전쟁보다 국내 기업들을 더 위협하는 것이 있다. 정부·정치권이 재벌개혁이란 명분과 반(反)기업 정서에 편승해 수시로 쏟아내는 ‘규제폭탄’이다. 지난주 발표된 공정거래법 개편안에는 지주회사, 일감몰아주기, 순환출자, 공익법인, 기업공시 등 대기업 규제가 총망라돼 있다. 순환출자 해소 목적으로 10여 년간 권장해온 지주회사를 이제 와서 적폐로 규정하니 옴짝달싹 못할 판이다.하반기엔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더 센 상법 개정안도 예고돼 있다. 중소·중견기업들도 획일적 노동규제에 발목 잡혀 하루하루가 걱정이다. 인허가 규제 몇 건 풀어봐야 기업들이 규제혁신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다.

‘사법 압박’도 점입가경이다. 검·경의 기업 압수수색은 거의 일상이 됐다. 선진국에선 면책해 주는 경영 판단에까지 ‘걸면 걸린다’는 배임죄를 남발해 50억원만 넘으면 살인죄 수준의 중벌을 가한다. 주 52시간 초과, 안전조치 미비, 피난·방화시설 훼손 등에도 CEO를 징역형에 처하는 법안이 수두룩하다. 경영활동 전반에서 ‘잠재적 범법자’로 간주하니 “한국에서 기업하는 게 기적”이란 말이 지나친 게 아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영실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영업이익 증가율이 지난해 27.1%에서 올 2분기에는 11.0%로 뚝 떨어졌다. 실적 악화 속도가 주요국 중 가장 빠르다. 삼성전자조차 스마트폰 부진으로 실적이 꺾였을 만큼 주력 산업 대부분이 중국에 잠식당하는 게 현실이다. 환율·원자재 불안, 보호무역, 내수 부진의 ‘3각 파고’에 노출돼 있어 하반기 ‘실적 쇼크’ 우려도 팽배하다.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통상전쟁에 맞서고, 경기 회복의 첨병이 돼야 할 기업들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미래 먹거리를 위해 기업가정신을 발휘해도 모자랄 판에 규제폭탄과 사법리스크를 피하는 데 급급해야 하는 처지다. 기업이 위축되면 투자, 소비, 고용에도 치명적이다. ‘일자리 정부’가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이렇게 홀대해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