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프랑스도 놀란 한국의 '유통혁신'… 국내선 규제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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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 코너 - 공정위 '철퇴'한국경제신문이 지난 2~6일 보도한 ‘글로벌 신(新)유통혁명’ 취재 과정에서 만난 프랑스 최대 슈퍼마켓 인터마르셰의 패트리샤 샤트랭 혁신담당 이사는 올 3월 한국을 다녀갔다고 했다. 프랑스엔 없는, 한국 유통산업의 혁신 사례를 찾기 위한 방문이었다.
편의점 - 근접 출점 규제
복합쇼핑몰 - 강제 휴업 검토
작은 혁신이 쌓여 큰 혁신
규제 풀어 고용 늘려야
안재광 생활경제부 기자
그는 △프리미엄 슈퍼와 마트의 시식 코너 △전국 어디에나 있는 소형 편의점 △놀이시설 같은 복합쇼핑몰 등 세 가지를 인상적인 사례로 꼽았다. 의외였다. 한국에선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인데…. 그의 눈엔 특별해 보였던 것이다.◆“무한 시식 등 佛에 없는 혁신”
“프랑스 마트나 슈퍼마켓엔 시식코너가 거의 없어요. 롯데 프리미엄마켓에 가봤는데, 소비자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더군요. 놀라웠어요.”
샤트랭 이사는 “가족이 다 먹어도 무한정 줄 것 같은 시식코너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미안해서라도 열 명 중에 한 명은 구매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프랑스로 돌아간 그는 인터마르셰 매장에 한국식 시식코너를 두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초소형 점포’가 전국 골목 곳곳에서 성업 중인 것도 그의 눈길을 잡았던 모양이다. ‘한국형 편의점’이다. 프랑스에선 적어도 매장 면적이 300㎡(약 90평)는 돼야 편의점(convenience store)으로 부른다. CU GS25 세븐일레븐 등과 같은 60㎡(18평) 안팎의 편의점을 한국에서 처음 접한 것. 샤트랭 이사는 “글로벌 유통산업의 최근 트렌드는 대형 매장을 확대하기보다는 잘게 쪼개 소형화하는 것인데, 한국은 이미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을 찾은 샤트랭 이사는 테마파크를 떠올렸다. 한 건물에 쇼핑몰, 백화점 등 쇼핑시설뿐 아니라 수영장, 골프연습장, 찜질방 등 비상업시설까지 갖춰 사람을 불러 모으는 데 놀랐다고 했다. “복합쇼핑몰은 미국보다 더 진화한 것 같아요. 모기업이 프랑스에서 추진 중인 복합쇼핑몰에 한국의 사례를 적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어요.”
◆국내에선 정작 규제대상에선역설적이다. 샤트랭 이사가 발견한 한국 유통산업의 세 가지 ‘혁신’은 국내에선 규제 대상으로 취급받는 신세다.
대형마트에 물건을 납품하는 협력회사가 진행하는 시식행사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마트나 슈퍼에서 협력회사가 시식코너를 운영할 때 판매사원 임금의 절반은 유통기업이 부담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유럽 유통 전문가의 눈에 놀라움의 대상인 편의점 출점도 앞으로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부가 기존 편의점 보호를 내세워 인근 출점을 과도하게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주말을 보내는 곳으로 인기인 스타필드 같은 복합쇼핑몰은 추가로 점포를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점포를 내려고 할 때마다 인근 시장 상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정치인들이 가세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복합쇼핑몰 월 2회 의무 휴업도 추진하고 있다.◆혁신은 디테일에서 시작
미국 월마트는 지난해 열대 과일 맛이 나는 피클인 ‘트로피클’을 개발해 선보였다. 독특한 향이 나는 트로피클을 월마트 매장에서만 팔았다. 그러자 이 피클을 구매하려고 월마트 매장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영국 온라인 슈퍼마켓 1위 오카도는 ‘기술기업’으로 불러도 될 정도다. 2015년 물류센터 내에서 박스에 봉지를 씌우는 기계를 직접 개발했다. 지금은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작업을 이 기계가 대체하고 있다.
유통산업 ‘혁신’은 이처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작은 혁신’이 일어나도록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선 유통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전통시장 장사가 안 된다고 하면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하고, 첨단 온라인센터를 짓겠다고 해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렇다 보니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면서도 제 목소리를 못 내는 업종이 돼 버렸다. “이제는 유통업을 좀 다르게 봐 달라”는 국내 유통기업 종사자들의 하소연에 귀 좀 기울일 때가 된 것 같다.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