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다양한 가치의 존중과 적법절차

제 가치만 내세운 싸움의 결과는 '파국'
상호 신뢰의 근거로써 적법절차 필요
그 심판 격인 법원의 판결 존중해야

윤성근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한 번 가지게 된 생각을 바꾸기는 무척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생각과 불일치하는 정보는 무시하고 자기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려는 심리 기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편향에서 벗어나려면 대단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행동으로 나아간 뒤에는 더 그렇다.

삶의 근본적인 가치에 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말로 설득해서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라는 것은 주례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결혼생활 성공의 비결이다. 서로 사랑하고 믿는 부부간에도 이것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서로 공통점이 별로 없고 심지어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이 믿고 지키려는 가치는 제각각인데 각자 자기의 가치를 남에게까지 구현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파국적이다. 종교를 포함한 이데올로기 진영 간의 갈등이 그렇게 되기 쉽다. 가까운 우리 역사에서 당파 간 싸움이 그런 것이었다. 각 당파는 진지한 철학적 입장이 있었고 타협할 수 없는 가치를 지키고자 했다. 오랜 당파 싸움은 결국 한 당파가 승리하고 상대방을 궤멸시킴으로써 종결됐다. 평화가 오는 듯했지만 한 가지 가치관의 철저한 추구는 동종교배를 통한 지적 유연성 상실로 귀결됐고, 변화하는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마침내 나라 전체가 파국을 맞았다.

각 당파 또는 진영에서 신화적 이야기로 가득한 자기편 위인을 내세우고 상대측 인물을 악의 화신처럼 묘사하는 것은 가장 초보적인 자기중심적 세계관의 표출이다. 상대가 악 그 자체라면 싸워서 절멸시키는 것 외에 교섭이나 논의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이 없다면 결국 실수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모든 논리는 극단으로 몰고 갔을 때 오류에 빠진다. 지나치게 철저한 가치 추구는 인간사회에서 구현되기 어렵다. 시민혁명을 거쳐 사회의 대전환이 일어났을 때 그 핵심적 가치는 자유였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연설은 우리의 피를 끓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그 자유를 극단적으로 추구하고 관철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에 동의한다.가치를 결여한 채 절차를 위한 절차를 좇는 도구적 이성의 공허함에 대해서는 마땅히 반성해야 한다. 법률기술자라는 비난은 이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가치 지향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사회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되돌아보며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함을 잊지 않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민족사회주의(Natianalsozialismus)나 문화대혁명이 내세운 가치는 한때 많은 사람에게 열정적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유발 하라리는 현생 인류 성공의 비결이 상호주관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 협력하는 능력에 있다고 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따르면 한 사회의 신뢰 수준은 사회적 자본의 핵심이다. 신뢰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믿고 존중하며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적 신뢰야말로 인류 성공의 기초이며 국가 번영의 근간이다.

그렇다면 서로 믿고 협조할 수 있는 신뢰의 공통점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다원적 현대사회에서 단일 가치에 대한 합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사회 구성원의 동의가 상대적으로 쉬운 적법절차(due process)와 법치주의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들은 상호주관적 이데올로기로서 사회 구성원들이 믿으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민주사회에서 법관은 적법절차의 심판을 맡고 있다. 법관의 재판에 대해 그 결론이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격하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은 어려워지고,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약화되며, 결과적으로 민주주의가 좌절된다. 사법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쌓기는 무척 어렵지만 훼손되는 것은 순간이다.

지난 신문기사를 검색해 보면 특정 재판에 대해 한쪽 진영에서는 드디어 정의가 죽었다고 비난하고 다른 쪽 진영에서는 마침내 정의가 실현됐다고 찬양하는 일이 서로 입장을 바꿔가며 거듭돼왔다. 이런 비난과 찬양은 모두 사법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