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 내세워 '큰칼' 꺼낸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금융사 "범죄집단 취급하나"

금융사에 전쟁 선포한 금감원장

취임 두 달 만에 색깔 드러내…업계 초긴장

부당대출·불완전판매 등 '근절 대상' 지목
저인망식 종합검사 부활…"제재수위 상향"
"관치금융 심화…금융질서 뒤흔들 것" 우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9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융회사들과의 전쟁을 지금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9일 금융회사들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포하자 금융계는 갑자기 긴장 상태에 빠져들었다. 조용하면서도 합리적인 스타일로 평가받는 윤 원장 입에서 예상치 못한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금융사 임원들은 하나같이 “윤 원장이 이전 일부 금감원장과 달리 요란하지 않은 대신 소신이 대단히 강한 것 같다”며 “앞으로 금감원 검사나 조사 때 잘못 걸리면 큰일나게 생겼다”는 반응을 내놨다.

윤 원장이 이날 제시한 금융감독의 제1 목표는 소비자 보호였다. 그는 금융사의 갑질, 부당대출, 불완전판매 등을 대표적인 근절사례로 지적했다. 일부 금융계 인사는 “금감원이 금융사와의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금융사를 범죄집단으로 보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부활하는 ‘저인망식’ 검사

윤 원장이 금융사들과의 전면전에 앞서 꺼낸 카드는 종합검사다. 종합검사는 금융사의 업무뿐 아니라 인사, 경비 집행 등 모든 분야를 샅샅이 훑는 ‘저인망식’ 검사 방식으로, 금융사엔 공포의 대상이었다. 금융사가 2~3년에 한 번 받았던 종합검사는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진웅섭 전 금감원장이 규제 완화와 자율성 강화를 강조하면서 폐지됐다. 대신 금융사 건전성에 국한된 경영실태평가만 정기적으로 해오고 있다.
금감원은 지배구조와 소비자보호 등 감독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금융사를 선별해 종합검사를 할 예정이다. 윤 원장은 이날 브리핑 이후 열린 질의응답 시간에 “앞서 금융사들과의 전쟁이라고 밝힌 건 과했던 것 같다”면서도 “소비자 보호를 위해 위험을 지적하고 잘못된 것을 제재하는 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윤 원장은 소비자 중에서도 저소득층과 자영업자 권익 보호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모든 은행권을 대상으로 대출금리 산정체계 조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저소득층과 자영업자에게 과도한 대출금리를 부과했는지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저신용자가 주로 이용하는 저축은행의 대출 영업실태도 고객들에게 낱낱이 공개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고금리 대출이 많은 저축은행은 현장점검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윤 원장은 영세 카드가맹점 대금 지급 주기를 현 2영업일에서 1영업일로 단축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취약 차주의 채무상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각 은행의 신용평가모형도 개선하기로 했다. 은행 점포 축소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각 은행이 지점을 폐쇄하기 전에 영향평가를 하는 사전 승인 제도도 시행할 계획이다.

◆“소비자는 무조건 약자인가”금융계는 윤 원장이 ‘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도 높은 감독을 선언한 것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일부에선 윤 원장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평가도 나왔다. A금융사 임원은 “윤 원장도 현 정부 고위관계자들처럼 금융권에 적폐가 많다고 인식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워 ‘관치금융’이 더욱 심해지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털어놨다.

윤 원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늘고 있다.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는 “모든 소비자를 무조건 약자로 보는 건 문제가 있다”며 “약관에 정해진 대로 치료도 하지 않으면서 암보험금을 받아가는 일부 소비자까지 보호하라는 것은 계약 중심의 자본주의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B금융사 임원은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다 준다면 금융사 수익이 급감하고 금융사는 다른 소비자에게 비용을 더 청구하려 할 것”이라며 “과도한 금융감독은 건전한 금융질서를 해칠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금융업계는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감원에서 소비자보호기구를 분리해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감원의 존재 이유는 금융사 건전성 감독을 통한 금융시장 안정인데, 이 목적이 소비자 보호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