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박영선 '夏日'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도시적인 느낌의 여성 이미지를 화폭에 주로 담은 박영선 화백(1910~1994)은 한국 근대미술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1910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의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한국 최초 서양화가 고희동을 비롯해 오지호, 이인성 등과 함께 해방 전후 신미술 운동에 앞장서며 독립미술협회(1946년), 미술문화협회(1947년) 발족에 참여했다. 이화여대, 중앙대 등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던 그는 누드화를 포함해 여성을 소재로 한 인물화를 즐겨 그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차례 입상했다. 1955년부터 4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한 뒤에는 잠시 추상적인 화풍으로 눈을 돌렸으나 다시 도시적인 매력을 가진 신여성에 집중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의 ‘하일(夏日)’은 도회지 여성의 아름다운 일상을 화폭에 옮긴 작품이다. 무더운 여름날 거실에 앉아 기타를 치는 여성과 무릎에 책을 놓고 응시하는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고급스럽게 잡아냈다. 오른쪽 탁자에는 진주 목걸이를 놓고, 책상에는 활짝 핀 백장미와 책을 배치해 럭셔리한 분위기도 연출했다. 창문 너머에는 녹음을 짙게 깔아 여름 분위기를 살렸다. 50대 후반에 작업한 작품으로 특유의 화풍과 기법이 잘 담겨 있다. 화면 구성이 알차고 색감이 뛰어나다. 폴 세잔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받아서인지 로맨틱한 사실주의 경향도 감지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