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와 취미는 창의성의 원동력… '워라밸' 추구하는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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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버 다이빙하고 조정경기 하고여러 명이 함께 노를 저어 속도를 겨루는 조정경기는 팀워크가 필요한 대표적인 스포츠로 꼽힌다. 한 줄로 앉은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노를 저어도 서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최근 국내 조정 대회에서 한국 과학계를 이끌 과학도들이 좋은 성적을 내 눈길을 끌었다. 과학기술특성화대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조정부는 지난 6월 부산광역시장배 전국조정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2016년부터 3년 연속 우승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조정부도 지난해 11월 ‘부산광역시조정협회장배 비치 조정선수권대회’ 남녀 대학부 6종목에서 전관왕에 올랐다. 서울대 재학 시절 조정 선수로 활약했던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평소 “조정이야말로 여덟 명의 선수가 한몸처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배려와 협력을 배우기 가장 좋은 스포츠 종목”이라며 “과학자에게 필요한 책임감과 배려심을 기르는 데 최고의 취미”라고 했다.
취미활동 통해 얻은 성취감이
어려운 연구과제 푸는 자극제
과학의 유산은 양이 아니라 질
창의력 위한 취미생활 중요
◆조정대회 여는 명문대학들해외 명문대학들도 리더십과 체력을 두루 갖춘 인재를 기르기 위해 조정을 권장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가 1829년부터 거의 매년 여는 ‘더 보트 레이스’는 이제는 유서 깊은 대학 간 교류행사로 자리잡았다. 지난 4월 열린 올해 레이스에선 남녀부문 모두 케임브리지대 조정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UNIST를 포함한 국내 과학기술특성화대학도 학생들의 취미활동으로 조정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오는 9월에는 울산 태화강에서 교류전도 열린다.
해외에서는 일찍부터 과학자의 자질을 키우고 연구 생산성과 창의력을 유지하는 동력으로 여가와 취미 생활에 주목하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규칙적인 여가 활동이 연구할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향상시켜 더욱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 보탬이 된다고 전했다. 네이처는 연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취미를 통해 연구자로서의 윤택한 삶을 살고 있는 유명 과학자와 젊은 예비 과학자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달 초 네이처가 뽑은 10대 동아시아 과학스타에 선정된 유방암 연구자인 징메이 리 싱가포르 게놈연구소 연구원은 휴가의 대부분을 스쿠버 다이빙 여행에 쓰고 있다. 리 연구원은 원래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기로 결심했고 10년 전에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땄다. 지금은 스쿠버 다이빙에 푹 빠져서 세계 곳곳으로 다이빙 여행을 다니고 있다. 고생물학자인 에드워드 데이비스 미국 오리건대 교수는 매주 계획을 짤 때 일하지 않는 시간을 꼭 넣고 있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때그때 흥미를 좇는다.◆휴식 속에서 문제 해결책 찾기도
이미 많은 연구에서 여가 활동이 혈압을 낮추고 피로를 줄인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특히 야외 활동은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데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네이처는 취미가 주는 가장 큰 효과는 어려운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에게 마음의 휴식과 함께 풀리지 않는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해준다는 점을 꼽았다. 과학자들은 가끔 열심히 해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구에서 잠시 벗어나 전혀 다른 일을 할 때 문제 해결책을 찾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한 예로 196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머리 겔만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는 소립자를 분류하는 개념을 불교 철학에서 가져올 정도로 ‘걸어다니는 잡학사전’으로 불렸다.취미는 연구 성과가 나지 않는 연구자에게 소소한 성취감을 주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제니퍼 허츠버그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는 주중에 세탁과 식료품 쇼핑과 같은 가사를 하고 주말은 오롯이 그림 맞추기 퍼즐과 블록을 조립하는 등 취미 생활에 투자한다. 그는 작은 블록을 다루는 게 바다 퇴적물에서 미세한 화석을 분석하기 위한 핀셋 사용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또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성하는 블록 쌓기를 통해 성취감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연구의 양보다는 질 향상에 초점 둬야
대다수 과학자에게 연구와 개인의 삶은 쉽게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연구에서 조금이나마 짬을 내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스스로에게 과연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있는지 반문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세계 어디를 불문하고 과학자 대다수가 과로 상태에 놓인 것은 사실이다. 2016년 네이처에 따르면 신진 과학자나 젊은 과학도처럼 새내기 연구자의 3분의 1 이상이 1주일에 60시간 이상 일하고 있다. 취미생활이 분명히 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취미를 숨기거나 바깥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기 때문이다.최근 해외 과학계에선 연구자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확대하기 위해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맞추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영국 의학과학한림원은 지난해 메드사이라이프(MedSciLife)라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여가활동을 하는 과학자들을 적극 알리고 있다.
알렉스 클라크 캐나다 앨버타대 교수는 “중견 과학자들이 먼저 나서 롤 모델이 된다면 과학적 성공과 개인의 삶은 모순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학의 유산은 양이 아니라 질에 달려 있다”며 “과학자의 삶의 방식이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과 혁신, 활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