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추월차선' 20만부 대박… "원작 추월해 다시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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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미다스 손 (1) 김난희 토트 주간 '편집의 힘'출판업계가 아무리 불황이라 해도 잘 팔리는 책은 있다. 책 표지에 찍히는 것은 저자의 이름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는 편집자다. 저자를 보는 안목과 방향을 잡는 기획력, 잘못을 걸러내는 꼼꼼함과 제목을 정하는 센스까지…. 이를 두루 갖춘 ‘출판계 미다스의 손’들을 만나 베스트셀러의 탄생 과정을 들어봤다.
한국 출판사들이 주목 안 한
美 30대 백만장자가 쓴 성공담
직설적인 화법과 튀는 발상을
한국 독자 입맛에 맞게 편집
단순 번역한 日선 인기 못 끌어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다는 생각으로 편집
올 상반기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부의 추월차선》과 《언스크립티드: 부의 추월차선 완결판》이 나란히 100위권에 들었다. 100권 가운데 9권뿐인 경제·경영서 중 두 권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한 저자의 책이었다. 2013년 한국에 처음 소개된 《부의 추월차선》은 지금까지 15만 부, 지난 1월 선보인 후속편 《언스크립티드》는 6개월 만에 5만 부가 팔려나갔다. 출간되자마자 손익분기점인 5000부를 훌쩍 넘었다. 경제·경영 베스트셀러의 기준으로 꼽히는 5만 부 능선을 넘어 연타석 홈런을 친 것은 출판계에서 이례적인 일이다.이 책을 편집한 토트 출판사의 김난희 주간은 “부(富)에 대한 시각과 직설적인 문장이 신선해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효자’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저자인 엠제이 드마코는 리무진 차량 예약 서비스 리모스닷컴을 창업해 30대에 백만장자 반열에 오른 인물. 그는 인도나 서행차선으로 가는 평범한 삶을 ‘현대판 노예’로 분류한다.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이 됐다고 성공한 줄 아는 것은 착각이라고 했다. 그래봤자 “1주일에 5일을 노예처럼 일하고 노예처럼 일하기 위해 이틀을 쉬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일과 돈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추월차선에 있다며 진입 방법으로 5계명(욕구, 진입, 통제, 규모, 시간)을 제시한다.
《부의 추월차선》은 미국에서 출간된 이듬해 에이전시를 통해 한국 출판사에 제안이 들어왔다. 하지만 주목하는 출판사가 없었다. 책을 처음 쓴 ‘풋내기 젊은 부자’가 저자였고 책이 미국 유명 출판사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김 주간은 직설적인 화법과 튀는 발상, 생생한 경험담을 담은 이 책에서 가능성을 봤다. 하지만 막상 원작 원고를 받아들었을 때는 난감했다. 무엇보다 분량이 너무 길었다. 번역하면 700쪽(원고지 2200장가량)에 달했다. 중복되는 비슷한 사례를 걷어내고 한국 실정과 거리가 먼 투자 얘기도 빼 500쪽가량으로 추렸다. 양 다음엔 질이었다.
김 주간은 “강연 내용을 기반으로 해 구어체, 신조어에 거친 비속어 표현도 많아 수차례 검토해 다듬었다”며 “단어 하나를 두고도 번역가와 상의하면서 1주일씩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대로 가져왔으면 망할 수도 있었던 책”이라는 그의 말은 일본에서 확인할 수 있다.일본 출판시장 규모는 한국의 5배에 이르지만 한국에서 스테디셀러가 된 이 책이 일본 출판가에선 잠잠했다.
‘편집의 힘’을 확인한 저자도 출판사를 믿었다. 이런 신뢰관계가 다음 책인 《언스크립티드》 출간 계약으로 이어졌다. ‘추월차선 포럼’을 통해 매주 수천 명의 기업가와 교류하면서 처음 책을 낼 때보다 훨씬 유명해졌음에도 저자는 기꺼이 첫 번째 책과 같은 조건에 도장을 찍었다.
김 주간은 “수십만 명의 젊은이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대기업에 취업 못하면 루저(패배자) 취급을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기에 저자의 노골적이지만 솔직한 조언이 독자에게 더 와닿았던 것 같다”며 “편집을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어느새 나도 저자의 팬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요즘은 보스턴컨설팅그룹 내 분야별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미래 산업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책을 만든다”며 “책이 좋아 일이 힘들어도 스트레스는 없다”는 그는 천생 편집자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