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뛰어난 연출… 메시지는 '글쎄'
입력
수정
지면A30
리뷰 - 뮤지컬 '웃는 남자'무대 예술의 절정이 펼쳐졌다. 압도적인 스케일에다 화려하고 감각적으로 꾸며진 무대 세트는 브로드웨이 유명 뮤지컬을 연상시켰다. 각 캐릭터도 초반부터 중심을 잡고 힘있게 극을 이끌어갔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웃는 남자’(사진) 얘기다. 국내 뮤지컬 사상 최대 규모인 175억원이란 제작비가 투입된 이 작품은 뮤지컬 한류의 탄생을 예고했다.
원작은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이다. 어린이 인신매매를 자행한 콤프라치코스의 끔찍한 범죄로 입이 찢어진 채 ‘웃는 얼굴’을 갖게 된 그윈플렌(박효신 분)의 굴곡진 삶을 담고 있다. 연출은 미국 뉴저지주립극장 플레이밀하우스 예술감독을 지내고 ‘레베카’ ‘엘리자벳’ 등을 성공시킨 로버트 요한슨이 맡았다.극 초반부터 강렬한 무대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스크린을 활용해 파도 치는 바다, 눈보라가 내리는 벌판,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 등을 실감나게 펼쳐 보였다. 귀족들의 가든파티, 궁전 침실을 호화롭게 잘 표현했다. 장면별 연출도 뛰어났다. 유랑극단의 여인들이 강가에서 발로 물장난을 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은 극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박효신 정성화 정선아 등 뮤지컬 대표 스타들이 총출동해 각 캐릭터에도 활기가 넘쳤다. 박효신은 풍부한 성량과 매끄러운 고음 처리가 돋보였다.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 역을 맡은 정성화, 그윈플렌을 유혹하는 조시아나 공작부인 역의 정선아는 노련하고 익살스러운 연기로 극에서 중심을 잡아줬다.
하지만 후반으로 들어갈수록 극의 힘이 떨어지고 메시지가 약해지는 듯했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라는 대사와 주제처럼 권력층의 각성을 주장하는 장면이 많이 연출됐다. 하지만 데아(민경아 분)와의 사랑 이야기에 힘이 실리며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끝나는 느낌이었다. 개연성도 다소 아쉬웠다. 그윈플렌의 갑작스러운 신분 상승과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가기까지의 과정 등이 촘촘하게 그려지지 못해 크게 공감하기 어려워 보였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