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두 세계의 영웅' 라파예트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1789년 7월14일. 성난 군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당시 루이 16세가 재정을 논의하기 위해 성직자와 귀족, 평민으로 이뤄진 삼부회를 열었으나 표결 방식에 불만을 품은 평민들은 따로 나와 국민의회를 열었다. 국왕이 이를 무력으로 제지하면서 분노한 평민들은 정치범을 구금하는 장소로 알려진 바스티유로 향했다. 프랑스 혁명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질베르 뒤 모티에 드 라파예트는 삼부회에 귀족 대표로 참여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사상을 지닌 라파예트는 평민 편에 섰다. 군중이 바스티유를 함락한 다음날 그는 신설된 국민위병 총사령관으로 임명됐다. 프랑스 인권 선언의 초안 작성에도 참여하며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다.1791년 루이 16세가 오스트리아로 도망치다가 붙잡힌 ‘바렌 배신사건’으로 라파예트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경비를 책임지고 있던 라파예트는 이 사건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해 여름 파리 서쪽 샹드마르스 연병장에서 자코뱅파 집회를 진압한 사건으로 그는 총사령관 자리를 내려놓았다. 오스트리아로 망명했던 그는 1799년 프랑스로 돌아갔다. 고향으로 내려가 여생을 보내다 1834년 5월20일 숨을 거뒀다.

라파예트는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영웅’이었다. 1776년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신대륙’으로 넘어가 참전해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가 이후 ‘두 세계의 영웅(The Hero of the Two Worlds)’으로 불린 이유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