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줄여 일자리 창출? 선진국은 실패했다

유승호 기자의 Global insight
산업화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 역사이기도 하다.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인류는 더 적은 시간을 일하고도 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근로자 권리 확대를 위해 싸운 노동운동의 역사도 산업화와 근로시간 단축 역사에 녹아 있다.
한국도 비슷하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며 목숨을 던진 전태일은 1969년 3월 박정희 대통령 앞으로 쓴 탄원서에서 “15세 시다공들은 한 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린다”고 했다. 오늘날 한국 근로자 대부분은 1960~1970년대 평화시장 봉제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여건에서 일하면서 훨씬 큰 경제적 풍요를 누린다. 햇빛도 들지 않는 작업장에서 봉제공으로 하루 15시간 일하던 소녀들에겐 휴식 자체가 절실했다.하지만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단축의 목적은 근로자의 휴식과 여가시간을 확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취지가 있다. 한 사람이 긴 시간 하던 일을 여러 사람이 짧은 시간 나눠서 하면 고용을 늘릴 수 있다는 논리다.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고용 사정을 개선하기 위해 택했던 정책이기도 하다.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까.

프랑스는 1982년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에서 39시간으로 줄였다. 경제학자 브뤼노 크레폰과 프랜시스 크라마르츠는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일자리가 늘기는커녕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당 40시간 이상 일하던 근로자들이 40시간 미만 일하던 근로자들보다 일자리를 많이 잃었다.

프랑스는 2000년 법정 근로시간을 주 35시간으로 더 줄였다. 마르셀로 에스테바오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와 필리파 사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강사는 35시간 근무제의 영향을 연구했다. 부업을 하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줄어든 근로시간에 돈을 더 벌기 위해 ‘투잡’을 뛴 것이다. 대기업 직원들이 근로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사례도 많았다. 노동시장 내 이동은 많았지만 총고용을 늘리는 효과는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성공한 사례로 독일이 많이 거론된다. 하지만 독일 역시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는 일자리를 늘리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제니퍼 헌트 미국 럿거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1984~1994년 독일 노동시장을 연구해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마틴 앤드루스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와 토르스텐 쉥크 독일 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 교수의 1993~1999년 독일 사례 연구에서도 일부 소규모 공장을 제외하고는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퀘벡주와 포르투갈의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연구에서도 일자리가 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근로시간을 줄여도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별로 줄지 않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근로시간이 짧아진 만큼 임금을 낮추면 추가 고용 여력이 생기지만 현실에서 임금 삭감은 쉽지 않다. 헌트 교수는 논문에서 “근로시간 감소를 상쇄하기에 충분할 만큼 시간당 임금이 올랐다”고 지적했다.헌트 교수는 또 근로시간이 줄면 기업은 근로자를 대체할 수단을 찾는다고 했다. 직원을 추가로 고용하기보다는 자동화 시설을 도입한다는 얘기다. 근로자를 새로 고용하면 임금 외에 사회보험료 등 부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도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다.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고용을 늘리는 방법은 결국 생산성 향상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선진국에 비해 낮다. 지난해 한국의 근로시간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4.3달러로 통계가 집계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22개국 중 17위에 그쳤다. 선진국 수준의 근로시간 단축보다 중요한 일은 선진국 수준의 노동생산성 향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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